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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육각형의 표범 ㅣ 반올림 41
박용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8년 3월
평점 :
재작년 겨울부터 "4차 산업"이란 주제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연수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의 입에서도 새로운 세상이 곧 올 것이니, 대비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이 요구된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걱정이 생겨나고, 지금의 직업 중 상당수가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며, 사람보다는 인공지능 로봇이 활동하게 되기 때문에 변화되는 시대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많은 매체를 통해서도 발표되어 나온다.
어느 날 작은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 심각하게 말한다.
"엄마, 내 꿈은 선생님이잖아. 그런데 미래에는 선생님이란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꿈을 바꿔야 할 것 같아."
그럴수도 있다. 점점 칠판 강의에서 태블릿 PC 강의로 변화되고 있고, 종이책교과서에서 디지털교과서로 변화되고 있으니, 지금의 교사 역할 또한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그 직업은 사라질테니 다른 꿈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는 인공지능 로봇을 이겨내기 위한 대처방안을 모색하라는, "꿈"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것 같아 참 씁쓸했다.
미래는 현재가 만든다는 박용기 작가님의 마음을 담아낸『무한 육각형의 표범』
VR체험이 어지러운 나에게 가상현실의 세계는 참 버겁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공지능 로봇과 틀에 박혀진 삶을 살아가는 동화속 그들에게 안타까움이 스며든다.
바유와 루갈은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되는 4차산업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다만, 바유는 유전자 편집을 전혀 하지 않은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자연적 출산이 이루어진 자연산(?) 출생이고, 루갈은 4세대 배아 유전자 보유자로 유전자를 변형하여 사회 속에서 유능한 인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유전자 편집을 하여 최적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출생부터 다른 두 아이는 모든 면에서 다를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에 바유는 선택될 수 없으며, 4세대 배아 유전자로 성장한 아이들 사이에서 뒤쳐짐은 막을 수가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벌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위험의 신호. 그것은 4세대 배아 보유 유전자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발작, 그것은 에식스(1급 전염병)으로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바유가 편안함을 느끼며 찾는 <무한 육각형> 서점 아저씨는 권위있는 과학자 남궁진 박사이며, 그는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커넥톰을 연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궁진 박사 또한 인류의 멸망을 위한 고의성이 아닌 자율주행 차의 오작동으로 인해 딸 에밀을 잃어야 했던 부정에서 시작된 연구가 인간의 삶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게 한 것이다.
안정적인 직업이 미래의 삶을 보장한다는 믿음의 확산은 삶의 목표를 오직 직업 선택에만 두게 만들었다. 먹고 사는 것은 국가가 보장해 주었음에도 이른바 리프레프(riffraff)라는 최하위 집단에 들어가는 것은 극도로 혐오해서 그런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직업을 결정하는 정책을 도입했던 것이다. 21쪽
현대 사회에서의 컴퓨터 사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을 활용하여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가고 있으며, 곧 인간의 삶 깊숙히 침투하여 완전한 변화를 꿈꾸게 할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인간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 또한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바유의 아빠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망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노예로 살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인간을 조정하는 우위에 선다면 인간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잇고, 인간만이 해야 하는 감정지수와 창의력 지수의 강점을 살려 그들의 세상에 맞서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루갈은 3만년 전의 뼈에서 뽑아낸 유전자를 온전하게 복원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며 이것은 현대 과학의 위대한 승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루갈에게 과학과 윤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윤리 따위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몇몇 다른 아이들도 루갈의 주장에 동의했다. 단지 멸종한 인류의 조상을 살아있는 상태로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51쪽
인공지능 스키너의 계략으로 아이들은 정신을 잃고, 정신을 지배받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주는 가장 무서운 변화일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커지는 만큼 인간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면, 그것은 발전이고 변화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계의 도움을 받아 변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것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계가 매체가 되어 그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회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내면의 세계 곧 마음이 움직여 변화되는 사회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닐까.
『무한 육각형의 표범』의 가상 현실 세계로 들어서면서 어지러웠던 나의 마음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아 있다. 미리 만난 인공지능의 세상이 막연한 걱정이었던 내 마음에 정말 그렇다면?이란 기정사실처럼 마음 한 켠에 남아 두려움마저 든다.
『무한 육각형의 표범』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지금 사는 세상과 앞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분명 변화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가설과 문제점들을 미리 만나봄으로써, 인간의 본질 그리고 인간의 고유성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라고 말이다. 『무한 육각형의 표범』은 우리에게 앞으로 만날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