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맨
슈테판 보너.안네 바이스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베타, 알파'라는 용어를 알게 된 건 수학시간이었다. 두 직선의 기울기를... 하며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또 다른 글자의 출현으로 갑자기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입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용어가 되었고, 어떠한 형태를 단정짓거나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이 그런 형태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가 둘째를 낳았던 2008년 무렵엔  베타맘과 알파맘이라는 말로, 자식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부모의 입장을 다큐로 만들어 많은 부모들에게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엔 '맘'에서 벗어나 '맨'과 '걸'이 되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소담출판사에서 새롭게 출판한 『베타맨』
『베타맨』은, 속이 여리면서도 진짜 사나이를 부르짖는 찌질남의 대명사이자, 확고한 역할 모델의 부재로 인해 갈피를 못 잡은 현대의 남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차고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첫째가는 여성을 「알파걸」이라 칭한다.

'베타맨', '알파걸'이란 명칭이 만들어져 세상에 나와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내 고민을 하면서 책장을 열었다.

베타맨의 대표적인 인물에 슈테판 보너, 알파걸의 입지를 굳히고 살아가는 안네 바이스, 두 사람의 일상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며, 그들이 베타맨, 알파걸의 모습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다.
베타맨 슈테판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는, 남자다운 남자의 자리가 불안하기만 하고, 그것을 위한 책임감의 부재로 내내 여자친구 마야와의 관계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알파걸 안네는, 자신에게 기대오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스스로 설 수 있는 남자 그리고 자신 또한 그에게 기대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사람의 관계가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혼란스럽다.

어쨌든 나는 한 가지만은 늘 다짐해왔다. 언젠가 우리에게 정말로 자녀가 생긴다면 - 이제 곧 그 '정말'이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 아이를 위해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지켜 내 가족을 돌보겠노라고.. 마야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략]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이것을 감행하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남자인 진짜 남자'가 필요한데, 내가 그런 남자가 못 된다는 것이다.   35쪽

 

우리는 서로에 책임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관계를 맺는다. 책임감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범주는 관계를 이루는 사람과 공간,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받아들이는 이의 수용능력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슈테판는 마야의 임신 소식에 소위 말하는 멘붕이 찾아온다. 그는 겁이 난다. 아버지와 같은 남자의 모습의 남편과 아빠가 될까 두렵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이야기속의 슈테판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면서 위태위태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보면서 자신의 한계와 부딪혀가는 모습에서, '남자'라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는 마야의 남편이고, 딸을 둔 아빠임에는 틀림없었다.


"어쨌든 난 평생 엄마로만 지내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경력 쌓기는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

"자, 안네. 직장에서 정말로 뒷전에 물러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뼛속까지 알파걸인 네가 말이야."

알파걸? 평가절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말이다. [중략]

"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 단지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종속되기 싫어할 뿐이지. 내 인생에 관해선 나 스스로 결정하고 싶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볼프강도 가사와 육아의 일부분을 넘겨받아야지. 내 돈은 내 손으로 벌 수 있도록 말이야."

"예전엔 나도 여자들이 아아와 경력,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게 제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먹기만 할 뿐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맨 정신으로 찬찬히 살펴보니까, 직장과 가정을 병합한다는 건 꿈같은 일이더라. 동화이지. 동화."  314~315쪽

 

안네는, 완벽을 꿈꾸는 삶을 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이 남자로 인해, 아이로 인해 변화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안네가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또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도 안네처럼 결혼은 했지만, 사랑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일과 나의 시간을 모두 희생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이들이 모두 알파걸이어서 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이 중심을 놓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알파걸은 아니지만, 결혼과 육아에 대해 한번도 내 계획 속에 포함시켜 보지 않았다. 결혼했다고,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의 일을 접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엄마인 내가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게 된 것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 나의 일을 아이의 뒤로 미루게 된 것이다. 이건 강요가 아닌 삶의 변화에 대한 나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우린 각자마다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 각자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또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시간을 공유하게 되면서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시간의 변화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 시간을 공유하는 그 순간 남자, 여자가 아닌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대장장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가 행복으로 충만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나는', '너는' 속에 가둬 놓으며 때로는 안정감이라고 여기고, 나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너도 아닐 수 있는데, 그래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 속에 넣어두고는 스스로 그 속에 갇히길 원한다. 남이 보는 나에 대한 평가에 진지한 나의 태도를 조금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진짜의 나를 잃기 전에 자신이 씌워 놓은 가면을 벗어둔다면 지금보다는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린 누구도 베타맨. 알파걸이 아니다.

진짜의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이제 과감히 가면을 벗고,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길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