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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ㅣ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도깨비'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울퉁불퉁 방망이를 들고 다니는 엉뚱하고 장난끼 많은 우리 옛이야기 속 단골 손님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도깨비는 이제 더이상 방망이로 소원을 들어주고, 억울한 이를 대신해 골탕먹여 우리에게 통통쾌함을 주지 않는다. 그럼 2018년에 만난 도깨비는 무얼 가지고 다닐까? 그 의문에 답을 주는 동화『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가 우리 곁으로 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스마트폰.
지우의 손에 잡힌 스마트폰은 도깨비로부터 전해진 것, 지우의 손에 그것이 들어갈 것이라는 도깨비들의 각본에 딱 맞추어졌다. 지우는 도깨비폰의 매력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도깨비 마을에 초대되어 밤새도록 놀기도 하고, 못다한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지우는 도깨비폰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일을 보고, 카페활동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전화보다는 카톡으로 일상을 이야기하고, 달력대신 스케줄러를 이용해 나의 일정을 정리하고. 이제 그만해야지 하는 스스로의 통제를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곁에 두려는 핑계섞인 중독 현상이 지우에게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어쩐지 지우는 웃을 수 없었다. 요즘 들어 도깨비폰을 사용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도깨비폰을 쓸 때는 좋았지만 쓰고 나면 몸이 무겁고 머리가 산만해져서 무언가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도깨비들이 부르는 대로 쫓아다녀야 하니, 잠을 푹 잔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신통한 도깨비 음식 덕분에 몸이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노는 일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지쳐만 갔다.
97쪽.
지우는, 도깨비들이 만든 앱을 사용할 때마다 요금으로 자신의 기를 지불하게 됨으로써 몸이 쉬이 지치고 힘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용료를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기'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이는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사용으로 우리의 정서가 침해됨을 지우를 대신해서 표현해준 듯 하여 엄마의 입장에선 참 감사하다.
엄마의 간섭과 통제가 때로는 잔소리로 들리고, 어른이라는 힘을 억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데, 지우가 도깨비폰을 사용하는 과정을 살피면서 아이들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 자제력이 힘을 발휘해주길 바라게 된다.

지우는 도깨비폰으로부터 멀어져보기로 한다. 그런 지우와는 달리 친구 수진이는 지우의 도깨비폰 매력에 빠져 도깨비 마을에 초대된다. 그러나 곧 수진이는 온 몸의 기가 빠지고, 도깨비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사람의 기를 빼앗아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수진이의 나약한 모습을 바라보는 도깨비들의 시선이 놀라웠다. 그들은 사람의 기를 먹는 도깨비가 아닌,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제할 줄 아는 건강한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앱을 만들면서 기 싱태가 회복되었던 것도, 뭔가에 마음을 집중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인가? 그러면서 행복감을 맛보아서"
윤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의 영혼은 본디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깊이 잠기면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워진단다."
지우는 아주 중요한 걸 깨달은 기분이었다. 도깨비폰을 사용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깨비 아이들과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을 차분하게 다잡는 것이었다. 185쪽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는 도깨비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생각을 들게 한다.
순박한 사람의 깨끗한 영혼을 좋아하고 응원하며, 욕심많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영혼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똥벼락을 내릴 수도 잇는 옛이야기속 도깨비 그대로 말이다. 방망이를 휘둘러 벌을 주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현대기기를 사용해서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굳건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를 읽으며 날씨 좋은 어느 멋진 날, 도깨비 마을에서 초대장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