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일 남자가 전화를 했다. 공증을 받을 일이 있는데 독일어 통역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무슨 일인지 검토하고 나서 대답을 하겠다고, 공증 관련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문서가 도착했다. 인생동반자 계약. 문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두 사람 이름 앞에 Herr라는 칭호가 붙어있었다. 두 남자의 결혼? 그랬다. 두 젊은 남남의 결혼과 관련된 서류였다. 답장을 썼다. 기꺼이 번역과 통역을 하겠노라고. 다시 독일 남자가 전화를 했다. 한국말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가며 번역했다. 조심 조심하며. 법학을 공부하시는 분에게 몇가지 미심쩍은 사항을 문의해서 번역을 마쳤다. 월요일 오후  두시 10분전, 공증인 사무소 바깥에서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만난 순간,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운 느낌. 한국 남자는 수수하고 앳된 모습이었다.  독일 남자는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공증인 앞에서 결혼 및 이혼에 따른 재산상황에 대한 합의 사항을 확인했다. 한국 남자의 자유 분방한 성격을 감지할 수 있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솔직하게 질문을 했고, 여러 규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런 게 꼭 필요하나요?... 독일 공증인은 매 번 웃으며, 이런 규정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말하면서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만약 한 쪽이 은행에 빚을 많이 질 경우, 배우자가 그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든지, 결별시 생계비를 안 줄 경우, 법정으로 갈 수 있다든지... 삭막한 법률 규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증인도 동성애에 대한 어떤 편견도 드러내지 않았고, 두 사람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좋은 느낌. 일을 마치고 나오며 든 느낌이었다. 사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랬다. 사랑이란 저렇게 어떤 관습적 틀에 구속되지 않고 실현될 수 있는 것이구나. 무애...사랑은 저렇게 넘치는 힘이구나.  

오늘, 한국 남자가 전화를 했다. 금요일 관청에서 결혼식을 하고, 양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후, 토요일날 친구들과 파티를 하는데, 올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기뻤다. 그들이 나에게도 마음을 열어주어 고마웠다. 두 사람의 결혼을 정말 마음 깊이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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