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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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글쓰기

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필름출판사


“꿈이 있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저는 꿈이 없어서 걱정이거든요.”

통계에 기반한 수월한 길은 존재한다. 저마다 다르게 사고하고 움직이는 인간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오답이다. 지름길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빠르게 올라간 만큼, 급속도로 추락하는 인간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꿈이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반드시 실패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하루하루 착실히 살아내는 인간은 꿈이 있든 없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특히, 글이라는 분야가 참으로 애매하다.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도서를, 어떤 사람은 최고의 책이라고 명명한다. 10년 동안 총 세 곳의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정답은 없다’이다. 연한 색의 도서가 있다면, 짙은 색의 도서가 있는 것이고, 얕음과 깊음의 기준은 읽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보통은 여기쯤부터 내가 왜 쓰는지를 나열한다. 그저 단순하게 쓰고 싶어서도 될 수 있고, 내 영혼의 풍만함을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왜 쓰는 것일까. 총 3단계의 목표 중 1단계는 등단이다. 2단계는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고, 3단계는 부커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현재는 1단계에서 머물고 있다. 등단하기엔 내 소설의 수준이 현저히 낮을 수도 있고, 혹은 현대 문학의 기조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쓰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나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딱히 할 말이 없다. 100만 자쯤 쓰면,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다.

김상현 작가는 사랑하는 일로 돈을 벌지 못하면 곁가지로 남겨두라고 한다. 속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곁가지로 남겨둔 채로 삶의 풍요를 만끽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남들이 직업이라고 부르는, 생계를 존속하는 일을 곁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곁가지는 당신들이 말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곁가지가 아닌 정체성을 말한다. 아직 등단은 하지 못했으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내 섣부른 자아는 이미 작가라는 문패를 드높이 걸었기에, 그것을 취미로 격하시킬 명분이 없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세 번의 겨울을 마주했다. 금전적 보상은 연에 50만 원 남짓으로 수익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작문은 곁가지가 아닌 심지라고 말한다. 심장 속 뿌리 깊게 박힌 심지를 뽑아낸 후 곁가지로 둔다고, 겨울을 피할 수는 없다. 앞으로 수십 번의 매서운 겨울이 남아있다. 그때까지 내 꿈이 곁가지가 될 일은 절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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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4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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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내고,

응시한다.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을유문화사


선명한 기억의 최초, 나의 부모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행동을 추구했다. 비슷한 사회의 격통에 시달린 후 돌아온 가정에서 아버지는 신문을 보셨고, 어머니는 밥을 안쳐야 했다. 이후 설거지했고, 방 청소가 끝나서야 쉴 수 있었다. 나의 직선적인 눈은 그것이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운전하시잖아.”

그저 앉아서 핸들만 요리조리 꺾으면 되는 게 뭐가 그리 힘들까, 생각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 차를 탄 상태로 어떠한 사고도 겪은 적이 없다. 몇십 년 동안 ‘무사고’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것은 내가 면허를 딴 지 딱 10년이 되었을 때다. 아버지는 집에 필요한 소소한 가구를 직접 만들었고, 수명이 다한 전구를 교체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대소사부터 배우자와 자식들의 정신적, 신체적 긴장도를 완화했다.

이 밖에도 어떤 타당성과 피해를 찾으려고 하면 끝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여름휴가 및 가족 모임에서 혼자서만 일하러 갔던 아버지의 외로움, 명절마다 타자의 집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귀가하지 못하고 요리를 했던 어머니의 극심한 노고 등.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부정에 물들지 않았다. 고칠 수 없는 불합리함에서 서서히 멀어지길 택했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서로에게 보상을 전했다. 우리는 친가를 방문하지 않게 됐고, 아버지는 종종 요리에 빠져들었다.

타인의 환경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장 가까웠던 각자의 선명한 선혈도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

릴케의 시선은 추상적이면서도 놀랍도록 구체적이다. 정적인 사물을 동적으로 표현하고, 단일한 것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삽입한다. 추상적임과 동시에 직설적이면서 또 부드럽다가 때론 거칠어진다. 전부 이해하지 않더라도, 공간과 상황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섬세한 사상가의 노래는 글을 읽는 내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과감한 시인의 추상적인 손길이 독자를 어루만진다. 릴케의 글은 읽다 보면 불명확한 글에서도 명확한 뜻을 얻어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떤 비참함을, 또 어떤 비정함과 여타 부정을 시로써 매혹적이고, 명확하게 풀어낸 이 글은 이해를 내려놓고 단어 자체를 음미하다 보면 글의 진수를 느끼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마치 산문처럼 느껴진다. 한 인간의 생애를 아주 덤덤하게 시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곳엔 분명 온갖 감정과 격통이 존재하나, 대단히 우아하게 풀어냈다. 마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세안하고 수염을 밀며 옷을 단정하게 매만지는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릴케의 글을 읽을 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릴케의 사상을 곡해하지 말고, 그대로 읽었으면 한다. 완독하고 나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겠지만, 읽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순수하게 음미하길 바란다. 릴케의 글로 분열을 조장하는 짓은 아주아주 몹쓸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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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지리 수업 - 교과서를 쉽게, 세상을 깊게
최재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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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지리 수업

최재희

한국경제신문


지리를 안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학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땅의 위치와 국경을 아는 것도 꽤 큰 도움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듣고, 보는 경험보다 ‘조금이라도 아는’ 상태로 하는 경험이 더욱 오래 남는다. 인간의 삶과 문화, 정치, 경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결정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리는 지역과 환경이 사회 구조와 역사를 어떻게 형성하고, 그 민족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하고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투자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국제 관계나 경제 흐름을 분석하기 위해서도 지리는 거의 필수적이다. 또한, 세계적인 문학인들의 글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문화적인 통찰력도 높아진다. 더해서 생태계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 기후변화 및 환경적 감수성까지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감정적으로만 이해하는 것과 공간 지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저 화만 내는 것과 한발 물러서서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과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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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실존과 경계 6
헤르만 헤세 지음, 장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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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니케북스


흑과 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악으로 치부된다. 오히려 회색분자라는 칭호와 함께 더 큰 악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간’을 본다고 넘겨짚으며 ‘박쥐’라고 비난한다. 극과 극이 얼마나 밀접하며, 얼마나 유사한지 모른 채 말이다. 내 눈에 그들은 데칼코마니와 다름없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고를 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즉시 악으로 치부하는 것.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죄’는 눈감고, 귀 막는 행태.

마지막으로 타 진영의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오만함까지.

이상향이 다를 뿐, 이들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싱클레어의 생각처럼 요즘 사람들은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아예 다르게 곡해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철학은 오롯이 일방향이고, 세상은 자신의 위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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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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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은 분명 위대한 일이다. 대다수, 심지어 작가조차도, ‘색’이라는 액자에 갇히는 게 두려워, 두루뭉술하게 뱉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번 색을 드러낸 예술가는 팬, 즉 지지자 절반을 잃게 된다. 특히,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삼는 사람은 단 한 줄이라도 어떤 독자들과 척을 지으면 그것은 생계의 위험으로 다가온다. 물론 더 큰 파이가 속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사는 것엔 지장 없겠지만, 개인의 사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작가라면 적어도 한쪽으로 쏠려 있을지언정 반대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연민이라는 것은 일방향이 아닌, 다방향 즉 분무기에서 분사된 물처럼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특정한 것에만 느끼는 연민은 착각이고, 오만이며, 고집을 넘은 아집일 뿐이다. 해즐릿은 분명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반대편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극과 극은 맞닿아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급진적 공화주의자이면서도 극단의 선 바로 앞에 멈춰서 매의 눈으로 반대편을 주시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랄 수 없다는 속담처럼, 긍지를 잃은 비평가가 진부한 비평가를 규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가 맹렬하게 비판하는 진부한 비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이 책을 읽고 가장 큰 소득은 스스로 진부한 비평가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벗어날 일만 남았다. 최소한 ‘그럭저럭 비평가’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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