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딱, 딸피, 꼰대, 영포티, 아재, 젠지 스테어, 급식충, 잼민이, 수저론(금, 은, 동, 흙), 헬조선, 탈조선, 노키즈 존, 맘충, 개저씨, 한남충, 한남유충 등 셀 수도, 세고 싶지도 않은 온갖 혐오적 표현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들을 유머로 승화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씹)선비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진지함은 가벼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가벼움이 진지함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논리의 가장 큰 대항마가 비논리인 것처럼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몇몇 단어는 혐오가 아닌 진실일지도 모른다. MZ는 원래 세대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젊고, 유약하며, 개념이 없는 사람’을 MZ라고 지칭한다. 심지어 그 MZ에 속해있는 80년대생도 그 조롱에 동참했다. 이제 80년대 중반까지 만으로 마흔이 됐다. 그들은 MZ이면서 아재고, 영포티다. 현시점 대한민국에서 40대는 가장 많은 조롱을 받고, 견뎌야 하는 세대가 됐다. 우리가 입에 올린 조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부 경험하게 된다. 열심히 조롱했던 그들도 결국 영포티가 될 것이고, 그 조롱의 공간에서 열불을 토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나는 제대로 된 말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다. 무분별한 비난 대신 논리정연한 비판을 표출하고, 쓸데없는 세분류에 현혹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타인이 이해됐고, 밉지 않았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 높은 빈도로 떠오르는 생각이 된다. 거듭된 상념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보편적인 태도로 변모한다. 혐오, 차별, 폭력에서 눈을 돌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산재한 불행에 초점을 두지 않고, 소소하고 잔잔한 행복에 감사함을 느꼈다. 불평불만 이전에 스스로 행동했다. 사회구조를 바꾸긴 어렵기에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실행력 없는 방구석 혐오는 밀어두고, 현실에서 한 번이라도 더 봉사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글이글 끓던 대한민국의 찬연한 본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차 사라지는 화마 밑에서 새하얀 꽃이 피어났고, 그 사이사이에서 파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올랐다.
비보호
가끔 침대 위에서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증상은 한겨울에 조금 더 심해진다. 보일러를 적당한 온도로 틀어두고, 침대 바로 밑에 이불을 깔고 드러눕는다. 침대라는 방파제 아래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기며 나태함에 대한 속죄를 한다. 평소에도 밀려드는 생각에 단일한 것에 집중하기 어려운데, 누워서 눈을 감으면 더욱 심해진다. 온갖 생각의 해일이 세로토닌을 휩쓸어간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 하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심호흡과 명상 그리고 강도 높은 운동이 불면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실패했을 땐 마지막 수단으로 맥주 한 캔을 한 번에 털어 넣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생성된 협소한 간이 울타리 안으로 몸을 욱여넣어 서서히 잠에 취한다.
*음주는 1년에 5번 정도로 거의 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