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글쓰기가 매우 힘들고, 작년의 글과 지금의 글을 비교했을 때 발전이 없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쓰고 또 쓰다 보면 전환점이 오지 않을까, 일단은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서 생각해야겠다.」
2017년 8월 2일에 작성한 〈갈피〉라는 글이다. 당시 나는 어떤 막연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글의 수준도, 맞춤법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부족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작문을 사랑하고, 쓰고 또 쓴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 3개월 후인 2021년 5월 24일 작성한 〈글쓰기〉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행복한 추억들을 회상하며 그 행복에 젖어 들어야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지금 행복하다. 글 쓰는데 대단한 이유는 없다. 여러 이유를 만들 수는 있어도, 결국 작문에 이유는 없다. 내가 작가도 아니고, 전달해야 할 의미가 있어야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쓰고 싶으면, 그냥 쓴다.」
어쩐지 이어지는 듯한 글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고, 이제는 글이라는 분야 자체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문단의 기조와 나의 성별이 현대에 맞지 않는가, 하는 어리숙한 생각과 함께 이따금 자조 섞인 반추를 하기도 한다. 글 자체의 미숙함을 인정하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지 두렵다. 2016년부터 끄적거렸던 20대 초반의 청년이 곧 있으면 30대 중반이 된다.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생 쓰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만족한다면 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예전만큼 굳게 신봉할 수는 없다. 방향성이라는 난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고, 타자가 말하는 기계적, 상업적 글쓰기는 나와 맞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어떤 작가는 돈이 되지 않으면 곁가지로 남겨두라고 조언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로 두라는 것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글쓰기가 맞지만, 곁가지로만 두기엔 열망이 너무도 뜨겁다. 그 열기에 화상을 입고, 현실에서도 허우적거린다. 가장 사랑했던 서재가 앞서간 이들의 조롱 섞인 무덤이 됐다. 그 조롱을 애써 못 들은 척한다.
또 3~4년이 흘러 이 글을 보면 나는 어떤 상황이고, 기분일까.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먹구름 같은 두려움과 동시에 잔 불씨를 통해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늦지만, 꾸준히. 작지만, 묵묵히. 꺼져도 다시금 타오를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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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정지
신춘문예 또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내 글이 출간되어야 글쓰기로 먹고살겠다는 계획을 시작할 수 있다. 2026년 1분기가 끝나기 전까지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면, 작문은 잠시 인생의 곁가지로 밀어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핑계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시를 방어막으로 두고 공부를 게을리했다. 작문에서는 조금의 발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나는 한 발짝도 떼어내지 못했다. 꿈으로 인해 나태해지고, 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타협했으니까. 앞으로 오랫동안 걸어야만 할 길을 방치하고, 사람들을 밀어내며 얻은 건 무엇인가. 불안을 얻어 글로 녹여냈고, 불편함을 인내하며 미사여구를 장식했다. 그뿐, 그딴 글들은 독자들에게 가닿지 않는다.
꿈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제는 그 꿈을 핑계로 인생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내 인생이 적절한 궤도에 올랐을 때, 그때 다시 도전할 것이다. 글을 완전히 놓는 것도 아니다. 브런치와 블로그 그리고 인스타에 서평과 비평은 꾸준히 올릴 것이다. 그저 소설과 잠시 헤어지려고 한다. 내 인생을 살면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상황을 겪다 보면 다시금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게 될 것이다. 당장은 백 보 후퇴하겠다. 다시금 일 보 전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