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미니북) - 불교 최초의 경전
법정(法頂) 지음 / 이레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꽤 오래 전 공지영작가의 소설로 이 제목을 접한 적이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 소설은 공지영작가의 작품으로 처음 접해본 것이었는데 너무나 현실적인 내용에 아직도 소설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 덕분에 위 제목도 기억에 오래 남았었다, 정말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주고 싶은, 아니 줄 수 밖에 없는 적절한 조언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그 제목의 불교의 이 경전에서 나온 글귀란 것을.  

 

그 때 이 경전을 찾아서 읽어봤을 때는 그렇게 글귀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지 않았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찾아들고 읽어보니 문구 하나하나가 각각 10년의 세월만큼의 깊이를 담고 다가온다.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서 이해했더라면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은 더 배려하며 조금은 더  성숙한 모습이었을까.

 

 

[무소의 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 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따른다. 또 그들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남을 해치려 들지 말고, 무엇이든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가한 처지에 아직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자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흔히 있다. 남의 자녀에게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진 코빌라라 나무처럼, 재가 수행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이 잘 만들어 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자유로이 숲 속을 거닐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친구를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생각이 깊고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하라.  그것이 이익이 됨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함도 적고 괴로움 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지혜로운 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읽다보니 최근 내가 깊이 분을 품게 되었던 일이 실은 매우 작은 일이었고, 내가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실은 많은 생명체들 중 극히 일부이며, 내가 근심하는 인간관계가 실은 그럴 정도의 가치가 없고, 결국 우리 모두는 각각 이 우주를 이뤄나가는 유기물들임과 동시에 그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큰 공동체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하루 살아가며 겪는 작은 일들 중에 화내고 깊이 상심하고 걱정할 만한 정도의 일들이 과연 있기는 할까.  따지고보면 다 흘러가는 일들이고 또 흘려보내면 그만인 일들인데, 마음이 생각만큼 쉽게 정리되고 자리잡지 못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자비]

...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온갖 빗나간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지혜를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나 역시 외아들을 키우고 있는 어미가 되어있다 보니 이제서야 저 위의 글귀가 실천하기에 얼마나 어렵고 가열찬 것인지 알겠다.  자비란 것이,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치열한 것이었구나.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자 "노력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아질 수만 있다면..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강력사건과 테러위협이 난무하는 세상이 조금은 더 편해지고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텐데.  결국 모두가 원하는 세상은 서로 아끼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행복한 곳일 텐데 말이다.  요즘의 폭력적인 세태가 목적의 잘못된 인지인지 아니면 과정의 잘못된 발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아들과 그의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이보다는 더 평화롭고 더 자애로우며 더 아름다운 곳이 되어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누리의 생명체와 사물 위에 사랑과 자비가 눈송이처럼 내려서 덮여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 그러려면 우선은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외아들을 키우는 어미의 마음으로.

 

 

[그런데 한가지, 문득 든 생각.  현재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는 이번 생이 끝나면 더 이상 환생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사후 다음 달라이 라마를 찾지 말라고 공언했다.  활불이라 일컬이지며 몇 천년에 걸친 꾸준한 환생을 통해 濟生의 목적이 뚜렷했던 그의 노력은, 중국의 조직적인 정치적 탄압과 국제사회의 물질공세로 인해 생명에 대한 더 이상의 자비를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영적 노력이 오히려 정쟁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어리석은 중생들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그 판에서 빠져주기 위한 과감한 결단이었을까.  그 결단이 어느 쪽이었든 결코 이 곳에 대한 포기는 아니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