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 동서 문명의 교차로, 자세히 읽기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유재원 지음 / 책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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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라는 나라는 한번이고 꼭 가봐야할 곳으로 여행리스트 1순위에 올라가 있으면서도 이슬람국가에 중동쪽 위치라는 지리적 상황 때문에 막연히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지 않는, 내게는 석류알 같은 존재이다.  먹고는 싶은데-심지어 몸에도 좋다는데- 시큼털털할까봐서 선뜻 손을 대지 못 하고 그저 그 빛깔에 홀려서 언제고 먹어보겠다고 두고만 보고 있는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  그래도 터키 관련된 기행문이라든가 여행후일담 기사 등이 나오면 가급적 챙겨보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나라의 오래된 문물과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 내 자신이 답답해하던 차에, 이 책은 기행문으로 쓰였지만 사실은 그 역사에 대해 세세한 설명으로 터키의 과거에 대해 문외한들이 잘 알 수 있게 씌여져있다는 서평을 보고 사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터키는...  참으로 오래 전에 황금문물을 이룩하고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엄청난 군사력으로 무식하게 학살을 자행하며 인명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없는 잔인무도한 폭도들이라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사실 그 왜곡된 시각은 터키(라기 보다는 그쪽에서 나타난 민족들)의 앞선 군사력과 문물로 유린당해 상대적으로 터키에 대해 비우호적일 수 밖에 없는 서구의 영화나 소설에서 기인한 편협한 무지함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스탄불을 둘러보며 이스탄불을 쟁취하기 전의 터키인들의 역사까지 깊숙하게 들어간다.  이러저러한 황제들이 있었고 그들이 제국을 확장하기도 하고 권력암투로 내정을 어지럽히기도 했던, 한 나라의 역사가 빼곡히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읽는 그 순간만큼은 중국사나 로마사를 읽을 때와 느낌이 다르지 않은데, 각 황제의 이름 뒤에 괄호 안에 별 의미 없는 듯 첨부되어있는 재위기간을 보면 그 때마다 "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재위기간이란 것이 기원전 몇백여 년 정도는 기본으로 나오고 있으니..  그 때 우리나라는 역사인지 전설인지 구분도 안 되는 고조선 시대이고 중국도 요즘 들어서야 신탁통치 부족국가가 실제로 있었다고 슬슬 인정받고 있는 상나라 정도 때였을 텐데, 이들은 벌써 성을 쌓고 전투병을 거느리고 거대한 궁전에 화려함이 가득한 일상생활을 즐기며 문자를 가지고 제국을 일구고 있었단다.  특히 제국시절의 터키는 그 크기가 유럽 내에서 영향력과 영토가 크다고 생각했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나 프랑스왕정시대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제국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 위대했던 제국의 와해는 1차세계대전 이후였다는데도 그런 거대한 제국에 대해서 나는 어쩌면 그렇게 무지몽매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리스는 터키의 식민지였다니, 전혀 몰랐었다.  근대까지 유럽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유럽인들에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서 유럽이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 원인인 듯 싶다.  가령, 할렘이란 것이 있기는 하나 내가 영화나 소설 등으로 갖게된 왜곡된 이미지와는 달리,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후궁제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든가.  심지어 술탄은 할렘에서 과거 중국의 황제들이 그러했듯이 주지육림의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터키에 존재했던 화려했던 제국이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로 폄훼당하고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페르시아나 바빌로니아와 달리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은 위대한 제국은 근세에 들어서 역사 속에서 패자가 되어 철저히 무시당했고, 불행히도 그 제국의 후손인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은 그런 왜곡된 시각을 정정하고 나설 정도의 경제력이나 국력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기사, 불안한 정정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중동에서의 경제활동보다는 부가 모이는 유럽에 편입되기 위해서 EU가입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는 오늘날의 터키로서는 과거의 영화를 운운할 형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터키는 식민시대를 거치지 않아서 고고학자(란 이름으로 포장된 근세초기의 유럽의 문물약탈자)들의 관심을 이집트 대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것이 행운이라고 할까..  덕분에 지금 터키에 가면 아직도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유적지로 남아있는 상태라니 여행자들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책 속에서는 이름만 접해보고 그 실체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항상 궁금해했던 여타 나라들도 언급되고 있다.  특히 히타이트에 대한 서술 부분 중, 당시 통치자들에게 백성이란 애시당초 관심대상이 아니었다는 부분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민간인들은, "백성"이든 "민초"든 "국민"이든 그 호칭만 다를 뿐 결국 위정자들의 현실유지를 위해 세금을 내는 존재로서만 그 존재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씁쓸했다.  민중이란 결국 국가가 보호해줘야만하는 중요한 존재라기 보다는, 국가란 거대한 물건이 버티고 굴러가는데 필요한 자금(세금)을 대기 위한 톱니바퀴이며 필요없을 때는 가차없이 烹 당하는 존재란 것이 1만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사실이란 것이 안타깝다.

 

 

이런 저런 상념을 뒤로 하고도 이 책은 터키라는 나라를 다시, 아니 조금이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멋진 역사서이자 기행문이란 점에서 충분히 소장의 가치가 있다.  언제고 터키를 여행할 때는 꼭 이 책을 들고가서 하나 하나 대조하며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내 무지함과 왜곡된 지식을 떨쳐버리고 그 언젠가에 함께 할 우리집 꼬맹이가 경이에 찬 눈초리로 열심히 질문할 때 조금이나마 바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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