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제국쇠망사 - 권력흥망의 비밀을 품은 제국 침몰의 순간들
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다시 역사물에 빠져들고 있다.   한동안 역사소설 쪽으로 몰입했다면 지금은 한무제, 진시황, 조조 등의 열전을 넘어서 고대 역사서라든가 현대인들의 역사평론으로 들어가고 있다.  20여 년 전에 읽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번역자에 의해 다시 나오는 고전들은 다시 읽어도 그 깊은 맛이 자꾸 우려내는 찻잎과도 같다.  현대인의 역사평론집으로는 그 전에 읽었던 책들이 一國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이나 또는 一人에 대한 평전이었다면, 이 책은 중국대륙에 존재했던 고대제국들의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말년의 쇠망사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형태의 역사평론서다.

 

 

책의 내용은 중국대륙에 존재했던 거대한 통일왕국들의 시작부터 마지막 청왕조의 직전까지를 그리고 있다.  청왕조의 멸망도 사실 그 왕조가 지난한 시절을 보내며 서서히 쇠망해나가던 차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그 최종도장은 중국 내부의 세력이 아닌 일제라는 외세에 의한 것이기에 빠졌나 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최초로 통일제국을 건립한 진나라를 시작으로 명나라의 쇠망으로 맺음을 한다.  읽다보니 역설적으로 느껴진 부분은, 앞의 제국이 이래저래 해서 무능한 황제와 탐관오리들 틈바구니에 웅대한 꿈을 품고 일어서는 영웅이 새로운 제국을 건립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그 다음 장에 넘어가면 그 영웅이 건립한 제국이 다시 시대를 제대로 못 읽고 현실 속에 안주해서 자기들끼리 당쟁하다가 멸망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이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진제국은 시황제 이전에 이미 유능하고 시대를 앞서간 통치자들이 있었기에 진왕 정이 그 일대를 통일하고 중국대륙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립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졌었다.  꿈에 그리던 통일제국의 통치자로 올라선 진시황은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하늘의 뜻에 대해 너무나 오만했던 나머지 후대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소홀했던 것 같다.  뒤늦게 2대를 지목하고 사망했을 때는 이미 늦었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해 큰 물을 살필 줄 몰랐던 주변의 간신들로 인해 그의 제국은 곧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렇게해서 한제국을 건립한 유방과 그 후사들은 또 무제 때의 과도한 국세확장과 자랑으로 이미 검증된 황태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준비가 안 된 후계자들을 통해 서서히 멸망으로 치닫는다.  왕조들의 역사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이 흘러가는지..  읽다보니 이것이 꼭 먼 과거의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내용이란 느낌이 너무나도 강해서 서글퍼졌다.

 

 

먼 훗날, 지구國 동아시아州  한국郡의 공화국 시절을 기술한 역사책에 보면 뭐라고 쓰여있을까?  "*대 대통령 당시, 정치는 심한 당쟁으로 얼룩져있었고 국론은 사분오열로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당과 야당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 당파들은 각기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국민의 생활과 경제에 대해서는 그 눈과 귀를 닫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전투구를 벌이며 이합집산으로 상대를 헐뜯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통치자로 고군분투하는 모모 대통령은 항시 행정을 집행하는데 어려움으로 어떠한 결과도 내놓을 수 없었다..."라고 연도만 달라질 뿐 내용은 똑같지 않을까?  문제는 이 내용들이 중국 고대제국들의 쇠망시절을 묘사하는 서두와 똑같다는 것일 뿐.

 

 

작년인가 읽었던 "1587 만력15년"이란 책이 생각난다.  명나라는 숭정제 때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 그 멸망의 징조는 만력제 때 이미 기초를 닦아놓았다는 것이 중국사학자들의 공론이란다.  위 책의 제목은 "그 해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인데, 태평성세였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고이고 썩기 시작했기에 의욕도 발전도 없이 정체된 사회로서 멸망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때를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고인 물은 썩을 일 밖에 안 남았고, 무능한 관리자들과 자기 이익만을 위해 치고받고 싸우는 염치불구한 정치가들이 넘쳐나는 나라에는 망할 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그간 역사의 현장들을 통해 알 수 있다면, 도돌이표처럼 지금 이 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여의도의 모습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첫 장에서 끝 장까지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 하고 읽었다.  그 시절에는 혜안이 있는 자들은 산으로 숨어들고 이웃나라로 넘어가서 뜻을 펼치고 또는 후학을 가르치며 후세를 도모했다는데, 21세기의 현재 사리사욕과 일신의 평안에 혈안이 된 자들이 정치꾼으로 활약 중인 고인 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은 이 끝없는 소용돌이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그 나물에 그 밥들이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나와서 서로를 향해 왈왈~ 짖어댈 후보군들을 바라보며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래서 역사서의 묘미는 과거를 미루어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염려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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