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실록 - 능에서 만난 조선의 임금
이규원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에는 "만약~"이란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상상해본다.  조선이 일본제국의 침탈로 인해 어이없게 붕괴되지 않았다면, 이 나라에는 지금쯤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과 진정한 의미의 명문가들과 뛰어난 문물들이 전해지고 있을까 하고.  삼한시대까지는 못 올라가더라도, 삼국시대를 거쳐서 그를 통일한 신라, 신라의 왕족들을 그대로 품고 건국한 고려, 그 고려의 문물들을 큰 전란없이 넘겨받은 조선.  밝혀진 과거만 해도 최소 2천년을 넘는 이 땅 위에 산재한 서화, 시집, 자기, 공예품, 각 왕실들의 격조높은 소장품들.. 그 모든 것이 왕조와 왕조를 넘어서 전해진 것만도 엄청날 텐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가 접해볼 수 있는 "유품"이라고는 "고작!" 어디 아마존 부족국가 후대가 누리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솔직히 분개하게 되는 나로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만약"이다.

 

노래하는 왕자라고 불리웠던 고종황제의 서손, 이석.  그 분이 어디선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전란에 하인들에게 짐을 부리어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궁궐이 아닌 사택에서 나서는데도 그 아버지(고종황제의 아드님)의 보화들이 수레에 수레를 끌고 끝도 없이 들려나갔다고..  그 보화들이 어디 요즘 시대에 말하는 싸구려(나는 그것도 없지만 어쨌든) 금,은, 보석류이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경복궁부터 일제에게 철저히 수탈당했으니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을 이어 내려왔을 법한 그 많은 서화, 보물들 하며 또 대대로 수백년을 선비로 상인으로 이어온 가문에서 갖고 있었을 그림이나 서예, 자기들 등 다 어디로 갔을까.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가서 감탄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도 당연히 있었어야 할 그 수많은 진정한 의미의 보물들이 분명 일본 어느 집들의 거실에 치장 중일 거란 생각을 하면 솔직히 "만약~"이란 단어를 안 떠올 재간이 있겠냔 말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라딘에서 접하고 얼른 사들인 것은 나로서는 필연이라고 할 수 밖에..

 

요즘이야 화장도 성행하니 별 의미가 없지만, 예전에는 한 개인의 삶을 살펴보는데 그 개인이 마지막으로 누운 묘의 부장품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왕릉이라면 그 시대를 책임지고 결정한 인물의 무덤인데, 막연하게 남아있는 기록으로 밖에는 접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시대상과 그 임금의 개인적인 면을 이해하는데 더 좋은 접근법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목마름에 충분히 답을 주며 한편으로는 각 임금에 대한 일정부분 왜곡된 인상을 수정하게까지 해주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요원인 제공자로 항상 무능하게만 생각했던 선조와 서자로 태생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결국 축출당한 광해군 부자에 대한 내 개인적 생각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나를 깨닫게 해주는 부분에서는, 정말 무릎을 쳤다.  그리고 결국 또 다시 "만약..."을 되내일 수 밖에 없었다.  무능하다 생각했던 선조임금도 사실은 앞날은 내다보는 능력의 소유자였고, 그런 능력은 그 개인의 천성이라기 보다는 조선왕실의 양육방식에서 길러나온 소양이란 것, 그렇다면 그런 왕조"들"이 모여서 일군 그 역사와 대물림은 얼마나 폭이 넓고 내용이 깊으며 한 시대에 따라잡기에는 어려운 수준의 집합체였을까..  그 모든 것을 다 놔버리고 건국 100년짜리 신생국가 같은 느낌으로 뿌리없는 집단처럼 살아가야하는 현대의 우리들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이 책을 통해 그 "만약..."에 대한 허상을 씁쓸하지만 조금이나마 실체로 느껴볼 수가 있어서 저자에게 정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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