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두 도시 이야기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46
찰스 디킨스 지음, 신윤진 외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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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충격적인 대반전은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가 자신이 사랑한 릴리 포터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볼드모트의 부하로 위장해 활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스네이프 교수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을 접하면서 스네이프 교수를 미워했던 해리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심적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왜 해리포터를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두 책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앞에서 스네이프 교수를 이야기했을 때 <두 도시 이야기> 속의 시드니 칼튼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시드니 칼튼도 스네이프 교수처럼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지만 사랑했던 사람의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정말 그런 사랑이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일 거다. 판타지 이야기 혹은 아이들 동화 속에나 등장할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살면서 그런 사랑을 접해볼 수 없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사랑도, 시드니 칼튼의 사랑도 이야기의 끝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들은 사랑을 이어갔고, 이루어냈다. 극악한 볼드모트가 세상의 종말을 만들려는 상황을 막아냈고, 왕과 왕비를 비롯해 모든 귀족들이 단두대에 처형되는 과정에서 대신 사랑하는 이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냈다. 그래서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도 읽지 않고, <두 도시 이야기>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 대해 깊은 연민이 몰려온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암울하면서도 역동적인 파리 빈민들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군상의 모습도 실감나게 묘사했다. 피에 굶주린 혁명의 종말적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여 마침내 자신을 희생하는 시드니 칼튼의 모습은 죽은 연인의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스네이프 교수의 모습처럼 숭고하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요, 지혜의 시절이자 어리석음의 시절이었으며, 믿음의 세월이자 회의의 세월이요,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곧장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 곧장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가 현재와 어찌나 닮아 있었던지, 당시의 가장 말 많은 일부 권위자들조차 선과 악, 즉 극단적인 대조만이 허락되는 세상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

 


<두 도시 이야기>의 첫문장은 양 극단이 부딪히는 파국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모순된 사회를 바꾸려는 빈민들 역시 피의 복수극이라는 파국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시대를 숭고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두 도시’는 각각 런던과 파리라는 소설의 배경을 말하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사건에서 파악할 수 있는 핵심은 파리라는 도시 안에 있는 두 계급의 갈등이다. 귀족과 왕정이 만든 세상의 반대편에는 굶주림과 핍박에 시달리는 빈민들이 있었다. 귀족들은 빈민의 가난과 굶주림을 외면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착취했다. 이미 결혼한 여인마저 빼앗기 위해 병든 남편을 혹사시켜 죽이고, 누나를 보호하려는 남동생을 살해하고, 자신의 마차에 치여 아이가 죽었는데도, 죽은 아이의 부모를 욕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이 고통이 자신의 대에서 끝나야 한다며 울부짖었지만, 바닥에 흘린 포도주를 머릿수건으로 담아 쥐어짜 아이에게 먹여야 했다. 그럴 때 귀족들은 풍족한 파티와 초콜릿마저 하나씩 떠주는 하인을 따로 둘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런 상황에서 빈민들의 분노와 슬픔이 하늘에 닿았다.



 


모순된 시대에는 모순된 행동이 나온다. 하나의 도시에 살고 있는 두 계급의 모순은 함께 살고 있지만 함께 살 수 없음을 드러냈다. 결국 억압에 시달리던 계급이 폭발하면서 바스티유 감옥이 점령되고, 왕과 왕비를 비롯해 수많은 귀족들이 단두대에 희생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의 복수극은 엉뚱한 희생자들에게까지 번졌는데, 혁명에 가담했던 마담 드파르지가 한때 자신의 복수를 위해 귀족이었던 찰스 다네이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어린 딸 루시까지)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찰스 다네이의 사형이 선고된 후 24시간 동안의 사건들은 시드니 칼튼을 중심으로 매우 긴박하게 흘러갔다. 마침내 찰스 다네이를 구하고 단두대 형장으로 끌려가는 시드니 칼튼의 옆에는 억울하게 죽음으로 내몰린 재봉사 소녀가 등장한다. 이 재봉사 소녀의 등장으로 시드니 칼튼은 자신의 죽음을 더욱 담담하게 추슬러 형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재산도 없고 지위도 없는 가난한 재봉사 소녀가 사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혁명이 가진 모순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칼튼의 죽음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더욱 빛내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소녀와 함께 칼튼의 죽음이 쓸쓸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독자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핀 뛰어난 인물 배치였다.

 

나는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르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 같은 옛 체제의 붕괴 속에 생겨난 새로운 압제자들의 기나긴 서열이 이 보복적인 도구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 지금, 오히려 이 보복적 기구로 인해 저들이 사멸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 아름다운 도시와 이 구렁텅이 속에서 떨치고 일어선 현명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 이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며 승리와 패배를 맛보는 가운데, 이 시대와 (혁명을 잉태할 수밖에 없었던) 전 시대의 악행은 스스로 속죄하며 소멸하리라. 
내게는 보인다. 내가 목숨 바쳐 사랑했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그들이 영국에서 보람 있게 성공을 누리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가 내 이름을 딴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나이 들고 구부정해졌어도 다른 부분은 완전히 회복되어 자신의 진료실에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헌신하는 그분의 모습이.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그들을 풍요롭게 해준 그들의 오랜 친구인 한 인자한 노신사가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 아니 세대를 지나 그 후손들에게도 마음의 성소가 되리라는 것을. 할머니가 된 그녀가 나를 추도하는 이 날, 나를 위해 우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와 남편이 이승의 행로를 마치고 지상의 마지막 침대에 나란히 누운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서로를 존경하는 만큼 나를 존경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게는 보인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는 모습이. 그 아이가 그 길을 훌륭히 걸어 내 이름을 빛내주리라는 것도, 그리하여 내 이름에 묻었던 오점이 지워지리라는 사실도 안다. 지극히 공정한 재판관, 명예로운 사람이 된 그 아이가 역시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 내가 잘 아는 이마와 금발을 지닌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와-그때가 되면 이 자리는 지금의 끔찍한 흔적도 사라지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다정하고도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어떤 행동보다도 훨씬 더 숭고한 일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평안한 안식을 향해 갈 것이다.

-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문단들

 


우리 시대는 프랑스 혁명의 세례를 받아 더 자유롭고 평등한 시대를 살고 있다하지만 언제 다시 절망과 어둠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알 수 없다죽음이 삶보다 가벼운 시대가 온다면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할까? <두 도시 이야기>는 그런 시대를 살아갈 힘과 이유가 될 것이다.

 



출처: https://www.eowls.net/660 [숲으로 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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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피지배 민족 혹은 피점령 국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개인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고방식은 거꾸로 된 반유대주의나 다름없다. 개별 행위의 잘잘못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므로 유죄라는 발상의 극단이 바로 홀로코스트였다는 점에서, 국적이나 민족을 기준으로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기억의 코드는 위험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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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 세제르(Aimé Choision)의 촌철살인을 빌리면, 그들은 히틀러가 ‘인류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the humanity)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을 대상으로 범죄(crime againistthe white man)를 저질렀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심적 백인지식인 대부분이 홀로코스트 이전에 일어난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제르의 비판은 설득력이있다. 홀로코스트가 ‘야만적인‘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 ‘문명화된유럽의 한복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유별나게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지구촌이 기억하는 제노사이드가 서구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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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날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광대한 흑토지대가 열렸을 때 나치의 식민장관 프란츠 폰 에프(Franz Ritter von Epp)는 아프리카 식민지 거주 경험이 있는 독일인들에게 먼저 이주를 권했다. 폰 에프에게 동부전선은 아프리카였고, 슬라브인은 ‘하얀 검둥이‘였다. 
-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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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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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장사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책이라고는 편집일만 해본 내가 책을 사고파는 일을 잘 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골에 북카페를 열어 놓고 가게를 찾는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조용한 카페에서 홀로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일상의 작은 행복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 북카페나 서점들은 매우 바쁘다. 가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하다. 게다가 서점 운영은 잠시도 틈을 주어서는 안되는 입출고 관리가 필수이다. 그리고 카페까지 운영하려면 이에 대한 기본 지식과 노하우도 쌓여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내 머릿속의 여유로운 상상은 그야말로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튼 가끔 빠지는 망상을 더해줄만한 책으로 고른 게 "오수도 서점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알라딘에 소개된 책에 대한 내용 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벚꽃으로 뒤덮인 산골짜기 마을 사쿠라노마치의 작은 서점 오후도. 도시의 오래된 서점을 그만두고 오후도 서점을 찾아온 청년 잇세이. 책과 서점을 둘러싼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따뜻한 봄바람처럼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결코 감동적이지 않으며 너무나도 통속적이라서 허허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재미도 없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은 요 몇년 사이 내가 본 책 중에 제일 재미없는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남겨야 하나 싶을 정도로 회의가 들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들여 읽었으므로 그나마 좋았던 걸 남긴다. 


글이 원고가 되고, 원고가 책이 된 후의 일들, 여기까지는 내가 하는 일에 속한다. 하지만 책이 출판되어 독자에게까지 전해지기까지의 과정도 책을 만드는 일 못지 않게 디테일하면서도 정교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책은 그래서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이 독자에게 읽히기까지의 과정도 그 책이 가진 중요한 운명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후자의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책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적인 전개를 답습하고 있었다. 책을 보는 내내 교훈적인(?) 일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데다가 재미도 없었다. 작중의 사람들의 관계가 너무나 작위적인 느낌에다가 전형적인 인물들의 모습은, 결코 동화되기 어려운, 읽으면 읽을수록 인물과 나 사이의 거리가 느껴지면서 객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북카페를 열어보고 싶다는 내 바람도 어쩌면 공허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말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최대한의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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