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편기본소득에 대한 새로운 시선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마 과연 인간을 노동하는 인간으로만 보는 것이 타당할까?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재개념화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간에 대하 보편 소득이 부과되는 것이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테크놀로지의 개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효과적인 조치로서의 과세와 소득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라 본다. 여전히 기본소득에 대해 좀더 실험적인 시도와 연구 결과들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보편기본소득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이 주는 심리적 이득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현재의 테크놀로지 방향 때문에 처한 문제에 대해 잘못된 지침을 주는 내러티브와 관련이 있다. 보편기본소득이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해 잘못된, 그리고 생산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운 해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기본소득은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없고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소수의 사람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세계로 피할 수 없는 추세에 따라 나아가고 있다고 암시한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대대적인 재분배뿐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때로 이 논리는 대중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보편기본소득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강조했듯이 이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불평등과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와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못 내려진 선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다. 그런데 보편기본소득은 패배주의적으로 이 문제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전파하는 테크 업체들의 지향점은 결국 이익 추구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민주적 인권적 가치마저도 장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쓰이고 개발되어야 하는지, 과연 자본적 이익 추구가 우리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숙고하고 검증이 필요한데, 그런 목소리는 AI테크 기업들의 목소리에 묻혀지고 만다.

AI 환상의 또 다른 측면은 페이스북의 모토인 "빠르게 움직이고 기존의 것들을 깨부숴라"에 잘 드러나듯 교란과 파괴를 미덕으로 강조하는 것인데, 이것도 반민주주의로의 선회를 가속화했다. 여기에서
파괴disruption는 노동자, 시민 사회 조직, 전통 매체, 심지어는 민주주의 자체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에 미치는 모든 부정적인 효과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흥미로운 새 테크놀로지의 결과이고 더 큰 시장 점유율과 수익 창출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이 모두가 공정한 게임으로 여겨지고 사실상 독려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