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驛>                                                                                                            

 


 

 

 

  <第一章>

 


 

 7.

 

                                 

                                                                <霞が關 주변-1989>

              

                                                                         <사쿠라다몬=高麗門>

                          

                                                                            <사쿠라다몬 역>

 

 
 ※ 참고 : 사쿠라다몬사건

1932년 1월 8일에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일본천황 '히로히토(裕仁)'를 저격했던 사건이다.
'이봉창' 의사는 '김구' 선생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가서
관병식(觀兵式)을 끝내고 '만주국'의 황제 '부의(傅儀)'와 함께
수레를 타고 가던 '일본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즉석에서 체포 당하는 이봉창 의사-흰옷을 입은 사람>
<사건현장 - X지점에서 폭탄이 투척되었다>

 


 

 잠시 후...


 '야마시타(山下)'로부터 연락을 받은 '미사와(三澤)'는 그 남자 승객의 사인(死因)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급히 그런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그러자 '사쿠라다몬<櫻田門-애도 성 내곽(內郭)의 하나. 여기서는 그 동네를 가리키며, 참고로 사쿠라다몬역은 東京都 치요다쿠(千代田區) 카스미가세키(霞が關) 二丁目에 있다>'에서 '동경역'까지 패트롤카(순찰차-patrol car)로 달린다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

 

 그래서 오전 10시 20분에는 수사(搜査) 1과(課)의 '토츠가와(十津川)' 경부<警部-케이시(警視)의 아래, 케이부호(警部補)의 위이며, 한국의 경감(警監)에 해당한다>와 '카메이(龜井)' 형사가 이미 '동경역'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자 또 내근조역 '타나카(田中)'가 '마루노우치구치(丸の內口)'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유체(遺體)는 검시(檢視)가 이미 끝나서 영안실(靈安室)로 옮겨 놓았습니다.”

 

 라고 '토츠가와(十津川)' 경부에게 보고를 했다.

 

 * * *

 

 그리고 '동경역' 내에는 영안실이 두 곳이나 있다.

 그곳은 바로 1층과 지하 2층.

 그래서 '토츠가와(十津川)'와 '카메이(龜井)' 형사는 '타나카'의 안내를 받으며

 그 남자 승객의 시체를 안치해 두었다는 1층의 영안실로 급히 향했다.

 

 그들은 '마루노우치구치(丸の內口)'에서 '야에스구치(八重州口)'로 빠지는 통로를 따라 가다가

 '키타구치(北口)'의 '제2자유통로(自由通路)'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한가운데까지 걸어 가자 우측에 <7>이라고 쓰인 벽이 보였다.

 

 여기서 보통의 일반사람들은 그곳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바로 그 벽 너머의 안쪽이 영안실이다.

 

 * * *

 

 아무튼 '토츠가와(十津川)' 경부와 '카메이(龜井)' 형사는 '타나카(田中)'의 안내를 받으며 그곳 영안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먼저 흰 벽돌을 아치(arch) 형으로 겹쳐 쌓아 올린 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어두운 듯한 은은한 조명(照明)과 함께 정면 안쪽에 놓여 있는 목제(木製) 테이블이 보이고, 이미 옮겨졌던 유체는 그 위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옆의 조그만 탁자 위에는 초와 향(香)이 켜져 있었는데, 그 선향(線香)의 연기가 천정 높이 올라가서 영안실의 공중에서 유영(遊泳)하듯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열차에 뛰어 들어서 자살을 한 사람의 경우에서도 보통은 이곳에다 안치를 했다가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 * *

 

 아무튼...


 '타나카(田中)'가 백포(白布)를 들치자 '국철마크'가 인쇄된 잠옷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동행한 검시관이 재빨리 그 유체를 조사했다.

 그리고는

 

 “후두부에 열상(裂傷-찢어진 상처) 그리고... 목에 색흔(索痕-묶였던 자국, 흔적)이 있군요?”

 

 라고 '토츠가와(十津川)'에게 말을 했다.
 
 “그렇다면, 결국?”

 “네, 뒤에서 때려서 기절시킨 다음, 목을 졸라서 살해한 것입니다. 아마도 넥타이 같은 것으로 목을 졸랐겠지요?”

 “그렇다면 사망추정 시간은?”

 '토츠가와(十津川)'가 또 물었다.

 

 “네, 그것은 해부를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대엿 시간 전으로 생각됩니다.”

 

 그러자 '토츠가와(十津川)'가 '타나카'를 돌아보며

 “소지품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네, 그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자 '타나카'는 이렇게 말을 하곤, 영안실 한 모퉁이에 챙겨둔 사망자 소유의 '보스턴백(Boston bag-바닥이 편평하고 네모졌으며, 가운데가 불룩하게 생긴 여행용가방)'과 세비로(背廣-신사복) 그리고 코트, 신발 등을 가리켰다.

 

 * * *

 

 '토츠가와(十津川)'가 그것들을 확인했을 때, 세벌의 양복들은 모두 감색(紺色)이었고, 제법 고급으로 보였다. 그리고 또 그 안에는 '와타나베(渡邊)'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주머니 안에는 56,000엔이 든 지갑만 있었을 뿐, 신분증이라거나 운전면허증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토츠가와(十津川)'는 그 다음으로 '보스턴백'을 조사했다. 그러자 제법 큰 '루이비통' '보스턴백' 안에는 내의와 카메라 그리고 '미야자키(宮岐)'의 토산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피해자의 주머니에는 개실(個室) 7호의 침대표가 들어 있었고, 그것은 '미야자키'에서 끊은 것이었다. 그것으로 보아서 피해자는 '미야자키'에서 승차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미야자키 역>

 

 “금품이나, 손목시계 등은 도둑맞지 않은 것으로 봐서, 원한(怨恨) 쪽에 무게가 실리는군요?”

 

 그때 '카메이'가 속삭이듯이 '토츠가와'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토츠가와'가

 

 “음, 범인은 분명 같은 열차를 탔던 것 같지만, 그러나 지금까지로 봐서는 조금 어려운 걸?”

 

 하고 마치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네, 거기다 사망한 지도 5,6시간이나 지났다고 하니, 범인은 동경역까지 오지 않고 도중에서 이미 내렸을지도 모르겠군요? 후지(富士)는 후지, 누마즈(沼津-시즈오카 현 동부), 아타미(熱海-일본 이즈반도 동북쪽에 있는 최대의 온천, 관광, 보양의 도시. 행정상 시즈오카 현에 속함), 요코하마(橫浜)에서 정차하니까요!”

 “그렇지...”

 

 '토츠가와'가 '카에이'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했다.

 

 * * *

 

 거기다 또---------------,


 열차의 승객은 비행기와 달리, 한사람마다마다 이름과 주소를 적어두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선, 신원확인부터 하는 것으로부터 수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하고 '토츠가와'가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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