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의 제목인 '너덜너덜해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듣고 동질감을 느꼈다. 아마도 무척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심리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사람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경우에 '황폐해졌다'라고 말하는데 작가는 '너덜너덜해졌다'라고 쓰는군. 참 독특하다.'라고 넘겨 집었다.

스포일러 같아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싶지만 그래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 않으면 내가 느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 책의 너덜함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육신'의 것이다. 신체의 일부가 지뢰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사람의 이야기란 말이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뭐랄까? 릴리 프랭키의 트릭에 걸렸다고 할까? '뭐야? 이거 내가 기대했던 게 아니잖아?'라는 생각으로 실망감도 들고, 뒤통수를 맞은 듯도 하고, 묘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6가지 이야기 중에서 이 6번째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가 가장 맘에 든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나를 배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6가지 이야기 중에서 뽑아 책의 제목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량도 가장 적다. 달랑 2장하고도 1쪽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이야기를 제목으로 삼았을까? 그냥 제목이 멋져 보여서?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너덜너덜한 휘고에게서 나를, 힘들어 지쳐 있는 내 삶을 본다. 처음 이 책을 보고 싶어했던 것도, '너덜너덜'에 집착했던 것도 모두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릴리 프랭키는 냉정하다. 별난 자신만의 세계를 풀어놓고 있지만 이것은 현실이기 때문에 독특하고 독특하지만 현실인-말 장난 같지만 그렇다-것이다. 휴고는 지뢰를 밟고 오른쪽 다리가 날아갔고 왼쪽 발톱이 부러진 채로 아직 너덜너덜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그에겐 더 이상의 희망도 없고 그냥 죽어 버릴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휴고를 두고 릴리는 말한다. '휘고의 발톱만은 그로부터 몇 번이고 재생하였다'라고... 어떤 상태든, 어찌 됐든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휴고처럼 '마지막으로 뭔가 엄청난 것을 하나쯤 남기고픈' 소망이 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며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있다. '발톱'이 자라는 것은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라진 '다리'가 재생되지 않는 이상 휴고에겐 그나마도 잔인한 일일 수 있다. 오히려 상처가 있음을,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테니까. 그리고 발톱이 있다는 것은, 아직 휴고에게 잃을 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옛날에 좋아하던 넥스트의 노래 가사처럼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라도 다시 위를 향해 튀어 올라오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잃을 게 남아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릴리 프랭키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휴고도 나도, 살아 있다.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냥 발톱만 자라게 할 게 아니라 좀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겠지. 그러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냥 이렇게 상처투성이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잖아? 휴고에게,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몸도 마음도 이제는 그만 너덜거리자고...

 
현실은 냉정하다. 릴리 프랭키의 현실을 그려내는 방법이 맘에 든다. 냉정하면서도, 난해한 웃음을 버무린 소설들이 모여 있는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