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유니세프 아동돕기 자선 바자회에서 1000원에 미치 앨봄의 또 다른 소설 <에디의 천국>을 사게 되었다.(현재 이 책의 제목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으로 개정되었다.) 그러면서 잊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감동이 떠올랐고, 최근에 새로 나온 이 책 <단 하루만 더>까지 손이 가게 되었다.

 미치 앨봄이 가진 화두는 '죽음'인 것 같다. 아직 세 권밖에 보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세 권이 모두 '죽음'과 연계되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설정상의 단순한 우연은 아닐 듯 싶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솔직해진다. 아니, 거짓을 말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도 아직 죽어보지 못해서(허걱!) 모르지만 흔히들 죽기 전에는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싹 스쳐간다고 한다. 그 안에 애써 거짓을 꾸겨 넣을 여유가 있을까? 아무리 머리로는 거짓말을 해도 마음은 알겠지...? 그러다보니 그 죽음을 통해서 보여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단 하루만 더>는 여기에 감동 요인 하나가 더 덧붙여 진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다. 우리를 한없이 큰 사랑으로 감싸주는 어머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머니는 '애증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때로 그 무한한 사랑은 우리를 구속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기에...

 주인공인 칙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로서는 자식들을 위해 한 선택(이혼)이었지만 칙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의 사랑 대신 아버지의 사랑을 원한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뒤늦게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 책은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도 한 사람 등장하니 유령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가족이야기는 모두 유령 이야기인 법이다. 사랑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앉아 있기 때문에.

-p9 ; 프롤로그

나는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과 에필로그 부분의 '가족'과 '유령'에 대해서 써 놓은 부분을 좋아한다. 모든 가족이야기는 유령이야기이며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면 그들을 잃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이 가슴에 뜨겁게 와 닿기 때문이다.(지금 내 곁에도 그런 유령이 몇 명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포지 베네토가 칙을 데리고 '아버지의 아내'를 찾아간 이야기였다. 진짜 사랑은, 끝없는 샘물 같아서 사랑하는 '몇 가지'가 아니라 '세상'을 적실 수 있는 것 같다. 포지 베네토는 자신의 아들만, 친구들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여자까지도 사랑했으니 말이다. 자신에게서 남편을 앗아간 그녀를 찾아가 이제는 다 늙어 추억밖에는 남지 않은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도리어 제 3자인 내가 그녀대신 그런 사랑을 지닌 사람을 버린 남편이랑, 이해해 주지 못했던 아들도 미워해 주었다.

 책장을 다 덮은 후에 난 어떤 날로 돌아가고 싶은가 생각해 보았다. 많은 날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아직 30년밖에 살지 않아서 온마음을 다해서 '단 하루만 더'하는 날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그런 날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후회없이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곁에 계시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 드리고...

 유령이 등장하니까 아마 이 책이 유령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 중에 유령 이야기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이들을 잃지 않는 진정한 방법이다.

-p252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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