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나무도감 봄·여름·가을·겨울 도감 시리즈
윤주복 지음 / 진선아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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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잘 정리해놓은 나무도감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도감>.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 드는데, 넌 왜 자연도감에 늘 환장하느냐고, 친구가 물어온다. 봄이면 콧물을 줄줄 흘리며 꽃가루와 송홧가루를 저주하고, 여름이면 개구리가 전방 30미터 앞에 있는데도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면서 자연도감은 왜 그리 좋아하냐고 말이다. 서점에 같이 갈 때면 자연도감 서적류를 한 번은 꼭 들춰보는 내가 신기하단다. 흠, 왜냐고?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라난 나는 지금까지 내 생을 통틀어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 고향집 5미터 뒤가 바로 산이니까. 산 위에 지은 건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산이 집을 백허그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향 동네에 있는 모든 집이 대부분 이런 식이라 그다지 특별함을 모르고 지내왔는데, 건물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는 요즘은 그렇게 자연 가까이 있었던 게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진다.

   어쨌든 이런 태생 덕에 나는 적어도 빌딩 숲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는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에 친숙할 거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개구리이고(뱀이 더 무섭긴 하지만 뱀은 개구리보다 자주 못 보니까!) 벌레를 보면 너무 무서워 기겁을 하며 도망을 간다. 나에겐 자연에서 나고 자랐다는 태생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몸이 예민한 탓에 겁이 무척 많다는 선천성도 동시에 있었기에, 이런 모순을 가진 채 살아오게 되었다고나 할까.

   선천적 기질이 태생을 늘 이기지만, 그래도 그 선천성 중 '호기심 대왕'이라는 특출난 기질 덕에 다행히 언제나 자연에 관심을 두며 살아올 수 있었다. 사계절 들로 산으로 다니며 온갖 동식물을 줄줄 읊으시는 부모님과는 다른 방법- 즉 백과사전을 통해 나는 자연을 배우고,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자연에 무척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점을 통해 나는 '자연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모순을 지닌, 긴 설명을 요하는 어른이'으로 자라게 되었다. 내가 자연도감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생태 백과사전은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고, 현재 나는 세 권의 자연도감을 갖고 있다. 내용이 괜찮아 보여 구매했던 이 세 권은 공교롭게도 모두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 형식이고, 지은이는 외국인들이다. 일러스트라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연을 그대로 찍어놓은 사진만큼 정확하진 않아 좀 아쉬움을 느껴왔다. 일러스트가 아닌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계절의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거기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감을 가진 나무도감을 찾기가 꽤 어렵다는 건 자연도감을 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니 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도감>을 내가 처음 봤을 때 "이건 기적이다아아앗!"이라고 외친 건 절대 미친 게 아니라 꽤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방금 위에서 언급했듯 이 책은 나무의 생태를 사진을 기반으로 수록했을 뿐만 아니라, 사계절 동안의 변화를 일자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아 휴대성까지 겸비했다는 게 참으로 엄청난 장점이다. 또한 머리말 뒤에 '나무 알아보기'라는 코너를 실어서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 수 있게 해놓았는데, 그 덕에 난 까먹고 있었던 '키나무'와 '떨기나무' 분류를 간만에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혹시 나처럼 나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과 호칭을 까먹었거나 업데이트하지 못한 '어른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키나무는 나무 중에서 아파트 2층 이상 높이로 자라는 나무를 말하고, 떨기나무는 아파트 2층 이하로 낮게 자라는 나무를 지칭한다. 사철나무처럼 말이다.





   고향의 동네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를 비롯해 고향집 정원과 텃밭에서 키우던 사철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개나리, 진달래, 산뽕나무,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산수유, 석류나무, 감나무 등등... 반가운 이름들을 책 속에서 만나며 푹 빠져 읽고 있던 나는 문득 이 책의 카테고리 분류 방식의 영리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나무들을 사계절 별로 범주를 나눈 게 아니라 '공원에서 만나는 나무',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나무',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 이렇게 나누어 놓았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다른 나무도감에서는 사계절 분류라고 하여 각 계절별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각각 한창일 때의 모습 하나만 줄줄이 수록해 소개하고 끝내는 게 다였는데, 이 책은 이런 분류 방식 아래 각 나무의 사계절 변화를 날짜별로 세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수록할 수 있는 나무의 종류는 좀 적어졌을지언정, 한 나무의 사계절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큰 이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설명을 이미지보다 더 많이 배치해 이미지와 텍스트가 따로 놀게 한 게 아니라, 이미지 아래 딱 필요한 정보만 기입해 놓음으로써 지루함까지 덜어냈다. 직관적인 구성으로 머릿속에 정보가 좀 더 오래 남을 수 있게 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자연도감일수록 이렇게 직관적인 구성으로 만들어 내는 게 유용할 텐데, 그 점에 관해선 이 책은 아이들에게 큰 어필이 되고도 남는 듯하다. 거기다 친환경 콩기름 잉크를 사용한 책이라니, 환경뿐만 아니라 이 책을 직접 잡고 읽는 모든 이들의 건강에 좋을 거라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


   이 책에 따르면 6월 19일쯤의 은행나무는 연두색의 작은 열매가 열린다는데, 오며 가며 보았던 집 근처의 작은 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를 관찰하러 책을 들고 가봐야겠다. 안 그래도 그 공원에서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밖에 없어서 못내 아쉬웠는데, 거기 있는 겹잎 나무들의 이름을 이 기회에 알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자연을 좋아하는 '어른이'로서 실용적인 나무도감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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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애들은 이상해 - X파일 고전 영화 그림책 2
크리스 카터 지음, 킴 스미스 그림, 최지원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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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시즌 10을 시작으로 다시 방송을 재개하고 있는 미국 FOX의 유명 드라마 'X파일(The X-Files)'. 2015년경 시즌 10 제작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 저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더랬죠. 너무 기뻐서요! 시즌 9로 종영된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조용해서 새로운 시즌이 나오길 이젠 영원히 포기하고 있던 차에, 무려 13년 만에 새 시즌이 제작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초자연적 현상을 쫓는 폭스 멀더 요원과 데이나 스컬리 요원의 그 케미를 TV 화면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볼 일을 잘 보다 도중에 벌떡 일어서버린 것처럼 어정쩡하게 끝나버린 시즌 9였던지라, 그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X파일을 보고 나면 무서워 밤잠을 설칠 때가 종종 있어서 어른들에게 그런 거 본다고 혼나면서도 드라마 방영 날 밤만 되면 TV 앞에 앉아 있었을 정도로 굉장히 좋아했던 드라마였으니, 제작 소식을 듣고 그렇게 방방 뛸 만도 했죠. 하하하.


   올해 1월 미국 FOX에서 시즌 11이 방영되었는데 국내에 방영되길 기다리느라 아직 보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시즌 12 제작이 불투명해져 버려서, 다시 저의 애간장이 타기 시작했는데요. 뭐, 모든 건 케 세라 세라, 하늘의 뜻에 맡기고 지금 당장의 것에 집중해야겠죠? 얼마 전 X파일의 제작자인 크리스 카터가 X파일을 녹여낸 귀여운 동화책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걸 제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제목은 <지구 애들은 이상해 The X-Files>. 표지에 멀더와 스컬리를 닮은 아이 두 명이 손전등으로 '엑스 X' 형체를 만들고 있는 것부터 참 귀여웠지 뭐예요.



   폭스와 데이나가 데이나네 집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데이나는 깜찍하게도 'The X-Files'라고 적힌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그 내용은 외계인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폭스는 시종일관 무서운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요. 이야기를 다 들은 폭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텐트에서 자지 말고 그냥 집에 들어가서 자자고 데이나에게 말합니다. 데이나는 세상에 진짜 외계인이 어디 있느냐며 겁쟁이처럼 굴지 말라고 폭스에게 핀잔을 주지만, 그럼에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 폭스. 그때 갑자기 텐트 바깥에서 환한 섬광이 보이고, 폭스와 데이나는 화들짝 놀라는데요! 텐트 밖으로 나간 데이나는 안심한 표정으로 현관에 달린 등일 뿐이라고 폭스에게 알려줍니다. 그때 별안간 데이나의 부모님이 현관문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두 아이에게 손전등으로 장난치지 말라며 늦었으니 이만 자라고 말하고는 들어갑니다.


   외계인은 확실히 없다며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 데이나에게, 그럼 저 무시무시한 그림자는 대체 뭐냐며 폭스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데이나가 그 그림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데이나네 강아지인 버스터가 아니겠어요? 세상에 무서워할 건 하나도 없다며 폭스를 다시 안심시키는 데이나. 하지만 두 아이 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발자국, 외계인 소리처럼 들리는 끔찍한 소리 등 미스터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데요. 과연 데이나의 말대로 외계인 같은 건 없는 걸까요? 아니면 폭스의 의심처럼 외계인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폭스 멀더 요원과 데이나 스컬리 요원의 캐릭터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 속으로 옮겨놓아도 그 빛을 발하고 있군요. 사방의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외계인 존재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폭스와 그것들을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깨부수는 데이나는 TV판만큼 알콩달콩 귀여워 보입니다. 더구나 외계인을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자신의 왼쪽 가슴팍에 외계인 브로치를 달고 있는 폭스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무척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군요. 두 아이는 이상한 소리를 따라 집 뒤편의 숲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책 후반부의 깜찍한 반전은 이 책을 읽고 있던 제 머릿속을 느낌표로 마구 두들기며 다시 처음부터 읽어 보게 만들 정도로 꽤 기발했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라는 X파일의 유명한 이 어록이, 그림책 뒷면에서는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어쩌면 뒷마당에)!'라는 깜찍한 문장으로 변형되어 있는데요. 그림책의 결말을 떠올려보면 그리 엉뚱한 말도 아니군요. 생각해보면 진실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열린 눈과 사고로 주변을 바라보는 멀더의 사고방식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현상의 진위를 가려내는 스컬리의 사고방식을 잘 조합만 한다면, 어쩌면 이 세계의 진실에 좀 더 접근하기 쉬울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책에서- 외계인은 존재하느냐고요? 흠. 이럴 때 적절히 대답하기 쉽게 해주는 X파일의 유명한 대사가 있지요.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 그리고-

   '거짓은 진실을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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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수지를 위하여 - 수다쟁이 가족들의 괴상한 잠 이야기
릴리 레이나우스 지음, 마르게 넬크 그림, 정진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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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으암~ 간밤에 잠은 잘 잤나요. 저는 엊그제 발을 다친 이후 통증 때문에 잠을 잘 들지 못하고 있는데요. 동화책 <잠 못 드는 수지를 위하여> 속의 어린 '수지' 또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여전히 밝은 바깥과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잠들지 못하다가 결국 한 시간 만에 거실로 나와버렸답니다.


   거실에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 아빠와 잡지를 읽고 있는 엄마,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9살의 오빠 사이먼이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수지의 말에 아빠는 양을 세어 보라고 권하고, 집에 양도 없는데 왜 양을 세어야 하느냐는 수지의 대답에 사이먼은 고양이를 세어보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언가를 세고 있는 게 잠이 드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수지에게 아빠는 진짜 양을 세어보라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세어보는 거라고 말하고, 엄마는 뭔가를 세다 보면 점점 졸음이 오게 될 거라고 귀띔해줍니다. 그리고 아빠는 덧붙여 그다지 도움은 안 되더라고 솔직한 경험을 이야기하네요.





   짓궂은 오빠 사이먼은 소, 여우, 하마, 혹은 뱀을 세보라고 말하지만 수지는 캄캄한 밤에 혼자 누워 뱀을 센다는 건 생각만 해도 무섭게 느껴질 뿐입니다. 엄마에게 주의를 받은 사이먼은 '모래 아저씨'가 잠들게 해줄지도 모른다고 수지에게 말하는데요. 모래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는 수지에게 사이먼과 아빠, 그리고 엄마는 모래 아저씨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줍니다. 가족들의 상세한 설명에도 누군가가 자기 방에 들어와 모래를 뿌린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수지에게 사이먼은 진짜 안 좋은 건 따로 있다며 할머니에게 들은 괴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빨리 잠들지 않으면 괴물들이 찾아올 거라고 말이죠!


   장난기 가득한 오빠 사이먼에게 엄마는 다시 주의를 준 후, 가족들은 이번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기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 수지 앞에서 괴물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참으로 못 말리는 가족이로군요. 하하하. 괴물은 절대 수지의 집으로 오지 않을 거라는 아빠의 단언에도 왠지 수지는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빠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문득 났는지 본인이 어렸을 땐 어른들이 '자루 귀신' 이야기로 무섭게 했다는 말을 하고 마는데요. 아빠의 실수에 대한 엄마의 우려는 곧 사이먼의 "자루 귀신이 뭐예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엄마는 자꾸만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먼과 아빠를 말리느라 정말이지 진땀을 빼는군요. 잠에 관련된 크리처들에 대한 가족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지는 오늘 밤 과연 잠이 들 수나 있으려나요.





   수지 가족의 끝날 줄 모르는 잠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어렸을 때 엄마나 할머니에게 들었던 잠에 관한 크리처들이 생각났는데요. 저는 그중에서 도깨비가 가장 무서웠답니다(흑흑). 어릴 적 유난히 밤잠이 없었던 저는 눈을 계속 뜨고 있으면 잡혀간다는 엄마의 괴물 이야기 위협(!)에 너무 무서워 눈을 꼬옥 감고 절대로 뜨지 않고 있다가 잠이 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다스러운 수지 가족은 오늘 밤 수지를 재울 생각인 건지, 잠 이야기로 불태울 생각인 건지 모르겠군요. 뭐가 됐든 유쾌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수지는 앞으로도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재밌는 네버엔딩 수다를 듣게 될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저도 수지 옆에 나란히 앉아 수지 가족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픈 발도 잊은 채 깊은 잠에 푹 빠져들고 싶네요. 어린 시절의 저와는 다르게 가족들의 수다를 듣고 있던 수지가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드디어(!) 편안하게 잠이 든 것 같아 덩달아 제 마음도 편안해진 흐뭇한 동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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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 -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거쳐 간 250점의 예술품과 흥미로운 뒷이야기
크리스티 지음, 이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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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 자본주의가 낳은 음흉한 관습 중 하나. 혹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자, '내'가 '너'보다 돈이 많으면 아름다움도 다 사들일 수 있다는 오만함의 집약- 어린 시절 우연히 TV 화면에서 본 정신없는 쇼를 보고 그게 경매제도라는 걸 알게 된 후 내가 '경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이다. 숨 가쁘게 다다다 쏘아대는 긴장감 넘치는 경매사의 외침, 그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손에 땀을 쥐도록 기싸움을 벌이는 입찰자들의 경쟁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미에 대한 숭배를 넘어 그걸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방법 또한 제대로 터득해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한 물품의 가치가 값으로 얼마인지는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지며 가격 경쟁을 하고 있는 두 명, 혹은 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매는 아름다움을 사고파는 행위를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킨 럭셔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생활에선 전혀 유용하지 않지만 '아름답게 존재한다'라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인정받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물품(주로 미술품이지만)을 가장 세련되게 팔고, 가질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더구나 모든 과정이 공개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가장 공평한 매매 방법이기도 하겠다. 영국의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그 방법을 현재까지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은 세계 최대의 경매회사 중 한 곳인 크리스티가 250점의 예술품을 들고 와 그들의 250년 경매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멋진 책이었다.





   글의 시작부터 경매제도에 대해 좀 깠지만, 비판적인 이성의 목소리를 잠시 꺼둔 뒤 본능으로 충만해진 지금의 내 이드(id)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함성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 수려한 경매 물품들에 현혹 당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게 사람이냐며! 경매에 대한 솔직한 나의 이 생각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적 욕구뿐만 아니라 예술적 욕구, 미적 욕구가 함께 충족되어 감성적으로 무척 충만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1766년 후반 크리스티의 설립자인 '제임스 크리스티'가 작고한 유명 귀족의 소장품을 런던 팰맬에서 '하우스 세일'이란 이름으로 경매를 개최한 이래,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회사에서 팔려나간 그 수많은 매력적인 물품들을 보고도 어찌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라파엘로, 렘브란트, 찰스 디킨스, 에드가 드가, 피카소, 폴 세잔, 반 고흐...... 미술 분야와 문학 분야, 그리고 중앙아프리카의 루바 조각상과 같은 전 세계의 이색적인 공예품을 넘나드는 크리스티 경매의 역사는 나를 몹시 매료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펠레의 유니폼이라든지 아인슈타인의 원고, 스타트렉의 기념품 경매를 보더라도 크리스티의 영향력은 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스포츠, 영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나의 이성은 돈 되는 것이면 다 파는 거 아니냐고 툴툴대며 말하고 있겠지만 지금 내 이드는 미적 가치가 있는 물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크리스티에게 놀라움을 느낀다. 안 그런가? 돈이 없어서 못 살 뿐이지, 돈이 있다면 내가 갖고자 하는 예술품을 능력이 되는 한 합당한 방법으로 갖고 싶은 욕구가 분명 있을 터인데, 경매와 같은 이런 창구가 없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합당하게 가질 것인가? 나에게 300억대를 쓸 수 있는 자금력이 있었다면 1994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필사본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사람은 빌 게이츠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 공책인 '코덱스 레스터(경매 당시 이름은 '코덱스 해머')'는 내 서재 유리 진열장 안에서 자랑스럽게 전시되고 있었겠지.





   단순한 경매회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던 크리스티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경매 회사 그 이상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저 물건을 응찰하도록 부추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물품들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하며 예술성을 지닌 물품들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말이다. 그러한 사실은 책의 내용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는데, 이 때문에 크리스티나 소더비와 같은 경매회사들이 꽤 대단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책의 서문에 이어진 머리말 속의 내용처럼 크리스티는 사교계의 주요한 거점이자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무료 전시장이며 사치스러운 전시회일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에 '확고하고 유용한 수치 데이터'를 첨가하여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크리스티의 역할 덕에 화려한 미술관을 통째로 가져온듯한 이런 진귀한 책을 지금 읽을 수 있게 되었기도 하고.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우리가 냉소적으로 가격에만 관심을 갖고

가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경매에서 획득한 가격은 우리에게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에서 규정하기 힘든 질적 특성인 만족감을 이해할 수 있는

진실로 믿을 만한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본문 13쪽]



   2016년에 발간된 이 책을 기준으로 했을 때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회화 중 가장 비싼 작품은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올라온 피카소의 작품이고 응찰가는 무려 1900억대이다(흐아아아!). 제목이 궁금한가? 궁금하면 이 책 380쪽을 펼쳐 이 회화 작품의 뒷이야기와 흥미진진했던 경매의 순간을 한번 음미해 보시길(그리고 나의 이드처럼 경이에 가득 찬 함성을 질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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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일기 I LOVE 그림책
도린 크로닌 지음, 해리 블리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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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6일

 무심코 지나치다 지렁이에 관한 재밌어 보이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지렁이의 일기>. 윽, 근데 지렁이라고?!

 어렸을 적 들판에서 놀다가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거나, 비만 오면 땅속에서 기어 나와 보도 위 여기저기에서 꿈틀대던 그 징그러운 지렁이 그림책이라니! 어릴 때 나에게 있어 지렁이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 동급의 생물체였다. 뭐,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개구리와 뱀보단 한 수 아래였지만 말이다.


 5월 8일

 엊그제 본 그 지렁이 그림책의 표지가 이상하게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지렁이가 나에게 마법이라도 건 걸까? 신기하게도 예전보다 지렁이가 그리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엿보기로 결심했다. 본인이 얼마나 자주 고장이 나는지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하는 글쓴이 '도린 크로닌'의 소개가 폭소를 자아냈다. 더구나 그림책 첫 장부터 위트 넘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흠, 나쁘지 않은데?





 5월 13일

 <지렁이의 일기>를 드디어 읽어보았다! 지렁이를 실제보다 덜 징그럽게 표현한 해리 블리스의 일러스트가 지렁이의 생김새로 인한 반감을 좀 덜어줘서 일단 부담스럽지 않아 괜찮았다. 가장 앞 면지와 가장 뒤의 면지에 지렁이의 일상생활을 담아놓은 듯한 스냅사진 그림이 가득 있어 재밌다. 거기엔 마치 본문의 내용과 동일하게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고, 친구 지렁이와 재밌게 노는 등 지렁이의 소소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렁이가 가족들과 토닥토닥하며 마치 바로 내 이웃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지렁이의 일기>는 아빠가 신문을 읽을 땐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훈계를 받는 현실 세계의 아이들처럼, 지렁이 또한 아빠가 신문을 '먹을' 땐 절대 귀찮게 굴지 않아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으로 시작한다. 지렁이는 친구인 거미에게 땅굴 파는 법을 가르쳐 주고, 다음날 거미에게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는 법을 배워보지만 지렁이는 거꾸로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낚시 철에는 땅속 더 깊은 곳으로 숨어 삽들의 침공이 멈추기를 바라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비가 내려 땅이 물에 푹 잠기면 어쩔 수 없이 보도블록 위에 올라와야 하는데, 그런 날이면 지렁이는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의 사방치기 놀이에 덜덜 떨며 땅이 마르길 기다린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렁이는 점심 도시락을 깜박해버려서 숙제를 먹어 치웠다가 선생님께 혼이 났는데, 벌로 반성문을 써야 했지만 반성문을 다 쓴 후 그 종이마저 먹어치워버린다. 정말이지 대단한 먹성의 지렁이가 아닐 수 없네. 푸하하하~ 이러한 지렁이의 웃긴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외모에 대한 고민, 간밤에 꾸었던 무시무시한 꿈, 장래희망 등 지렁이가 가지는 진지한 고민들 또한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다 읽고 나니 뭐랄까, 이젠 길거리에서 지렁이를 만나게 되더라도 덜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지렁이가 꽤 친근하게 느껴지는걸?

 아무리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아장아장 잘 걷는 귀여운 조카가 조금 더 크면 꼭 같이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5월 15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낚시 마트 앞에서 낚싯밥으로 파는 갯지렁이들을 보았다. 몸을 굽혀 가만히 지켜보니 꿈틀거리고 있는 게, 살아있는 듯 보였다.

 "너희들은 삽들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했구나. 이런 가엾은 녀석들."이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주인아저씨가 "걔네들 사육된 건데..."라고 말씀하셨다.

 아하.


 5월 18일

 며칠간 계속 내리던 비가 서서히 잦아들어 갔다. 미세먼지 없이 깨끗해진 하늘을 만끽할 겸 해 질 녘 집 앞 공원을 거닐었다.

 아직 여름이 아닌 5월 중순이지만 고향이었으면 보도 위나 흙길에 두세 마리는 누워 있었을 지렁이가 여기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봄기운이 만연해서 아직 땅속에만 있을 리는 없을텐데. 다 어디로 간 걸까?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과 확장이 지렁이에게조차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흙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지렁이가 떠난 흙 위에서 인간이 계속 살아나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거 아닌가?

 문득 <지렁이의 일기> 속 마지막 장의 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너무 작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가 땅속에 산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하지만 엄마가 늘 얘기하는 것처럼

지구는 땅속에 사는 우리를 절대 잊지 않는다.


 지구처럼 우리도 지렁이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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