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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나무도감 ㅣ 봄·여름·가을·겨울 도감 시리즈
윤주복 지음 / 진선아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잘 정리해놓은 나무도감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도감>.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 드는데, 넌 왜 자연도감에 늘 환장하느냐고, 친구가 물어온다. 봄이면 콧물을 줄줄 흘리며 꽃가루와 송홧가루를 저주하고, 여름이면 개구리가 전방 30미터 앞에 있는데도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면서 자연도감은 왜 그리 좋아하냐고 말이다. 서점에 같이 갈 때면 자연도감 서적류를 한 번은 꼭 들춰보는 내가 신기하단다. 흠, 왜냐고?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라난 나는 지금까지 내 생을 통틀어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 고향집 5미터 뒤가 바로 산이니까. 산 위에 지은 건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산이 집을 백허그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향 동네에 있는 모든 집이 대부분 이런 식이라 그다지 특별함을 모르고 지내왔는데, 건물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는 요즘은 그렇게 자연 가까이 있었던 게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진다.
어쨌든 이런 태생 덕에 나는 적어도 빌딩 숲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는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에 친숙할 거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개구리이고(뱀이 더 무섭긴 하지만 뱀은 개구리보다 자주 못 보니까!) 벌레를 보면 너무 무서워 기겁을 하며 도망을 간다. 나에겐 자연에서 나고 자랐다는 태생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몸이 예민한 탓에 겁이 무척 많다는 선천성도 동시에 있었기에, 이런 모순을 가진 채 살아오게 되었다고나 할까.
선천적 기질이 태생을 늘 이기지만, 그래도 그 선천성 중 '호기심 대왕'이라는 특출난 기질 덕에 다행히 언제나 자연에 관심을 두며 살아올 수 있었다. 사계절 들로 산으로 다니며 온갖 동식물을 줄줄 읊으시는 부모님과는 다른 방법- 즉 백과사전을 통해 나는 자연을 배우고,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자연에 무척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점을 통해 나는 '자연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모순을 지닌, 긴 설명을 요하는 어른이'으로 자라게 되었다. 내가 자연도감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생태 백과사전은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고, 현재 나는 세 권의 자연도감을 갖고 있다. 내용이 괜찮아 보여 구매했던 이 세 권은 공교롭게도 모두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 형식이고, 지은이는 외국인들이다. 일러스트라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연을 그대로 찍어놓은 사진만큼 정확하진 않아 좀 아쉬움을 느껴왔다. 일러스트가 아닌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계절의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거기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감을 가진 나무도감을 찾기가 꽤 어렵다는 건 자연도감을 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니 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도감>을 내가 처음 봤을 때 "이건 기적이다아아앗!"이라고 외친 건 절대 미친 게 아니라 꽤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방금 위에서 언급했듯 이 책은 나무의 생태를 사진을 기반으로 수록했을 뿐만 아니라, 사계절 동안의 변화를 일자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아 휴대성까지 겸비했다는 게 참으로 엄청난 장점이다. 또한 머리말 뒤에 '나무 알아보기'라는 코너를 실어서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 수 있게 해놓았는데, 그 덕에 난 까먹고 있었던 '키나무'와 '떨기나무' 분류를 간만에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혹시 나처럼 나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과 호칭을 까먹었거나 업데이트하지 못한 '어른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키나무는 나무 중에서 아파트 2층 이상 높이로 자라는 나무를 말하고, 떨기나무는 아파트 2층 이하로 낮게 자라는 나무를 지칭한다. 사철나무처럼 말이다.

고향의 동네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를 비롯해 고향집 정원과 텃밭에서 키우던 사철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개나리, 진달래, 산뽕나무,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산수유, 석류나무, 감나무 등등... 반가운 이름들을 책 속에서 만나며 푹 빠져 읽고 있던 나는 문득 이 책의 카테고리 분류 방식의 영리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나무들을 사계절 별로 범주를 나눈 게 아니라 '공원에서 만나는 나무',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나무',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 이렇게 나누어 놓았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다른 나무도감에서는 사계절 분류라고 하여 각 계절별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각각 한창일 때의 모습 하나만 줄줄이 수록해 소개하고 끝내는 게 다였는데, 이 책은 이런 분류 방식 아래 각 나무의 사계절 변화를 날짜별로 세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수록할 수 있는 나무의 종류는 좀 적어졌을지언정, 한 나무의 사계절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큰 이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설명을 이미지보다 더 많이 배치해 이미지와 텍스트가 따로 놀게 한 게 아니라, 이미지 아래 딱 필요한 정보만 기입해 놓음으로써 지루함까지 덜어냈다. 직관적인 구성으로 머릿속에 정보가 좀 더 오래 남을 수 있게 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자연도감일수록 이렇게 직관적인 구성으로 만들어 내는 게 유용할 텐데, 그 점에 관해선 이 책은 아이들에게 큰 어필이 되고도 남는 듯하다. 거기다 친환경 콩기름 잉크를 사용한 책이라니, 환경뿐만 아니라 이 책을 직접 잡고 읽는 모든 이들의 건강에 좋을 거라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
이 책에 따르면 6월 19일쯤의 은행나무는 연두색의 작은 열매가 열린다는데, 오며 가며 보았던 집 근처의 작은 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를 관찰하러 책을 들고 가봐야겠다. 안 그래도 그 공원에서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밖에 없어서 못내 아쉬웠는데, 거기 있는 겹잎 나무들의 이름을 이 기회에 알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자연을 좋아하는 '어른이'로서 실용적인 나무도감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