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끗 차이 디자인 법칙 - 우리를 사로잡는 신의 한 수 테드북스 TED Books 9
칩 키드 지음, 김성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명료한 것과 미스터리 한 것으로 풍부하게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시각으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 직접적으로 느끼는 현실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세계는 각자 바라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기 마련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지난 몇 주간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는 자욱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안갯속과 같은 미스터리로 가득 찬 것으로 느꼈던 점 역시 그런 맥락이었을지도.)


   어제 완독한 <한끗 차이 디자인 법칙>의 북 디자이너 칩 키드는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을 디자인에 적절하게 접목시킬 줄 아는 뛰어난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의 균형을 잘 이루어 '좋은 첫인상'을 주는 디자인을 창작하는 것은 그의 주된 임무이자 목표이다. 허나 그는 이 두 요소로 괜찮은 디자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둘을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는 판단 지수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그런 여러 목적 아래 만든 '미스터리 지수 Mysteri-o-meter'라는 인포메이션 그래픽으로 그는 이 <한끗 차이 디자인 법칙>에 등장하는 모든 시각디자인 사례에 적용시켜놓기까지 했다.



   1장에서 칩 키드는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이나 장소를 사례로 들며 제 기능을 다하는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에 대해 그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용도가 불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는 처방약과 영화 포스터 속의 판독 불가능한 제작 크레디트(=빌링블록)에는 미스터리 지수 10(1에 가까울수록 명료함이, 10에 가까울수록 미스터리함에 더 가까운 식으로 구분)을 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렇지만 '비잔틴 양식의 미로'라고 일컬은 소득공제 신청 양식은 미스터리 지수 척도 범위를 아예 벗어난 13에 가 있었으니 방금의 처방약과 빌링블록은 그나마 나은 축에 들려나. 이에 반해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의 딱 중간인 5에 위치한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의 멋진 E1027 테이블이나 아이스버킷 챌린지, 미스터리 지수 1에 위치한 -명료함 끝판왕- 카운트다운 신호등, 4에 위치한 동양의 젓가락 등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이 적재적소에 잘 적용되어 있는 디자인을 마주할 때면 저자는 열정적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2장에서는 칩 키드가 일에서 직면하는 디자인적 문제를 매일 보는 이미지와 사물을 이용해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떤 식으로 접목하는지를 나열해놓고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베스 코블리너의 개인 자산 관리에 관한 책 표지에 ATM 영수증을 차용한 북 디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과식의 종말>이라는 미국의 비만 문제에 대한 책표지에 사람들이 건강할 것이라고 착각하곤 하는 당근 케이크를 배치한 것이었다. 몹시 매력적인 이 두 책표지를 설명하려니 '기발하다'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한 번 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 그리고 기발하다 못해 독특하기까지 했던 북 디자인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 책의 제목이 <사기꾼>이었다. 칩 키드는 뉴욕 지하철의 에어비엔비 광고판에 누군가가 해놓은 낙서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의 표지에 '논평적 낙서' 콘셉트를 적용시켰는데, 마치 길을 가던 누군가가 붉은색으로 'FRAUD(=사기꾼)'라고 낙서처럼 휘갈겨놓은 듯한 표지가 무척이나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 세상 사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꼭 뉴요커나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다.

관심만 있으면 충분하다.

또한 어쨌든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첫인상을 통해 대상을 판단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배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본문 32쪽]



   싫든 좋든 우리는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 혹은 사물들을 곧잘 만나게 될 것이다. 심미적일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적절하게 디자인된 사물을 만나면 처음부터 좋아지듯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칩 키드의 말마따나 훌륭한 첫인상을 가져야 하는 건 비단 책표지에만 한정되는 건 아닐 터. '이 세상이 얼마나 크든 작든 관계없이,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는가?'라는 책 말미에 있는 저자의 질문을 보고 나니 '나는 명료함과 미스터리함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의 첫인상은 어떠한가?'라는 식의 물음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칩 키드가 알려준 조금 다른 방식의 시각을 탑재해서 말이다.


   미리 짐작해보건대 명료하거나 미스터리한 이 세상처럼 내가 찾을 해답들 역시 뭐- 그 둘 사이 어딘가쯤에 위치해 있지 않을까? 내 첫인상이 뭐가 됐든 간에 적어도 소득공제 신청 양식의 첫인상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 확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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