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죽음을 앞둔 서른여덟 작가가 전하는 인생의 의미
니나 리그스 지음, 신솔잎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삶이 내게 던져주는 바윗덩어리와 같은 의문과 숙제와 고난을 잘 견디며 살아가다가도 이따금은 그 무게에 짓눌려 녹다운 되곤 한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내 뇌 속의 무의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해 한없이 고찰하며 안으로 안으로 깊게 다이빙하곤 한다. 그에 따라 내 마음과 몸 역시 끝없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의식적으로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수면 아래 있으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그저 방관만 하며 지낼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의 의식은 자기만의 묘책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처방한 묘책은 바로 긴 제목의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책.



치유될 수 없는 것들은

견뎌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본문 155쪽, 몽테뉴의 글]



   이 책은 '니나 리그스'라는, 한 여자의 에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나 리그스가 삼십 대 후반의 꽤 이른 나이에 공격적인 전이성 유방암을 발견한 후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1년 6개월간의 시한부 삶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그 유명한 랄프 왈도 에머슨의 5대손이라고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건, 그런 가문이 아니었더라도 이 사람의 책을 나는 읽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하긴 뭐. 랄프 왈도 에머슨이 미국 역사에 남긴 그 철학적이고도 문학적인 유산 외에도 '유방암'이라는 유전적 유산을 남겼다는 걸, 가혹하게도 저자가 그 유산을 잘 계승해야만 했다는 걸 어쩌면 언급해야 했을지도 모르니, 이리 됐든 저리 됐든 저자의 눈부신 가문에 대해 결국 밝혀야 했으려나.



   니나가 항암치료를 처음 받으며 그랬던 것처럼, 요즘의 나는 복잡한 머릿속으로 인해 글이나 영상에 집중해 그 행간을 이해한다는 게 몹시 어려웠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힘들어 오 분 동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한 자 한 자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니나 리그스가 되어 희비가 교차하는 삶을 매일 살아나가며 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여장부라고 알려진 '몰리 피처' 신화의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고자 염원하면서, 한편으론 간밤의 꿈에 가슴 초음파 모니터 속에서 어슬렁대던 호랑이 두 마리를 보고 아연실색함과 동시에 완벽히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는 차가운 이성을 가지려 노력한 채, 앞으로 계속 걸어나가길 멈추지 않는 그녀와 함께 말이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두 아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 고민하며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혼자 사라질 연습을 하다 공황 발작으로 기절해 어둑해진 방 안에서 깨어난 그 순간에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다 느꼈다고 할 만큼 같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렇게도 마음이 혼란스럽고 슬픈데, 자신의 투병 과정을 그리고 매일 흘러가는 일상을 담담히 적어내려가고 있는 그녀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묵묵히 투병 생활을 하며 일상을 기록해나간 그녀의 이 책은, 그녀의 삶은, 확실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 지니와 더욱 끈끈해진 전우애 속에서 같은 처지이기에 가능한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농담을 문자로 끊임없이 주고받고, 가드닝에 전력을 다해 몰두하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파를 찾기 위해 며칠을 인터넷이라는 토끼 굴에 푹 빠져 지내고, 또한 영화 '트루먼쇼'에 자신의 상황을 빗대기도 하는 등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재치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유머는 불치병에 굴복당해 죽을 날만 기다리며 수동적인 삶을 사는 시한부 환자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저자는 신처럼 받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몽테뉴의 글들과 그녀의 위대한 조상인 에머슨의 글들을 구도자의 그것처럼 곱씹으며, 낡은 앨범을 넘기듯 찬찬히 소환하곤 하는 지난 추억들을 통해 매 순간 스스로의 삶을 더 아름답게 채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투병 생활 와중에 다발성골수종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는 그녀의 열아홉 이탈리아 여행 속에서 매일 끊임없이 치열하게 서로 싸우며 영원히 함께 신나게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니나의 삶 역시 치열하리만큼 빛나고 있었다.



   책을 덮고, 에필로그를 읽다가 촉촉해진 눈가를 훔치며 나는 생각했다. 니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이렇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걸 포기하지 않았는데. 당장의 힘듦과 아직 오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함에 잠식 당한 채 계속 주저앉아 있는 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힘든 '지금 이 시기 역시 내가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할 내 삶의 일부'라고 말이다.


   니나 리그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그녀가 엄마와 함께 읽었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다 읽은 후 써 내려간 아래의 감상평과 몹시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말은 삶의 마지막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할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일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자가 쉽지 않은 여정을 풀어가며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 아름다웠다.

삶의 마지막을 의미 있고 만족스럽게 준비하기 위해

각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본문 98쪽]


낯선 장소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높은 방어벽을 세운 채 온몸으로 이방인임을 자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 없다. 다만 어둠속에서 팔짱을 끼고 빛이 새어드는 방향을 응시할 뿐이다.
- 107쪽

이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저 눈으로 보라.
- 120쪽

내 몸은 하나의 진실이자 하나의 장치였다. 내가 상실한 것들에 손을 얹고 나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하나의 장치.
- 224쪽

버스, 기침, 녹슨 못 하나. 죽음은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죽음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고개를 돌리고 만다. 죽음은 삶과 꼭 닮았다. 오렌지 빛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때와 저무는 때 하늘의 색깔이 같아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 242쪽

나는 내 삶에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부정하거나 거부하고 싶지 않았고 짜증나고 혼란스러운 일도, 심지어 지겹게 느껴지는 일상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 258쪽

불치병 환자로 사는 것은 끔찍하게 깊고 어두운 구덩이 위를 가로지르는 줄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런 병에 걸리지 않고 사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고, 다른 점이라면 고작해야 안개와 구름 덕분에 아래 놓인 구덩이가 얼마나 끔찍한지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어떤 날은 바람으로 안개가 걷혀 아찔한 어둠이 보이고, 어떤 날은 자욱한 구름으로 아래를 볼 수 없는 거라고 덧붙였다.
- 299쪽

어떤 날은 믿음, 그러니까 지팡이가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믿음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펜타닐, 옥시코돈, 이부프로펜 등 다양한 진통제에 의지해 살고 있지만 내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내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믿음뿐이었다.
- 3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