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지은 집
정성갑 지음,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기획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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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른 자연 속에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쏙 들어간 드림하우스를 직접 지어 사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내가 염원하는 동안, 뛰어난 미감을 가진 많은 건축가들은 오늘도 자신을 위해, 혹은 건축주를 위해 꿈의 집을 실체화하고 있다. 최근 읽은 <건축가가 지은 집> 속 멋스러운 집들을 지은 다양한 건축가처럼 말이다.


   <건축가가 지은 집>에 수록된 스무 개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지은 집 중 똑같은 느낌을 주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집을 지은 건축가의 미감 및 철학과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저마다 다른 특징과 개성을 갖추고 있는 집을 구경하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개중에는 건축가 조남호가 염곡동에 지은 집처럼 집 내부와 바깥마당의 높이 차가 거의 없어 내 취향이 딱히 아닌 집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었기에 외부와 내부가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는 착시 효과가 생겨 공간이 한층 넓고 시원해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이렇듯 나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다양한 건축 방법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가 최욱의 부암동 자택이나 건축가 이병엽이 지은 양평 집처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집도 있다. 이병엽이 지은 양평 집은 집 안 곳곳에 입체적이고 우아한 라인을 그리고 있는 선과 면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층고가 높게 설계된 거실과 확 트인 개방감을 준 내부 설계 또한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게 참 좋다. 최욱의 부암동 자택은 인적이 드물고 고지대에 위치한 집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딱 부합하기에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튜디오 두 곳을 비롯해 서재나 다실이 전부 본채(침실과 다이닝룸)와 떨어져 독채로 있다. 이는 열두 달 중 공기가 깨끗한 날이 100일도 채 안 되는 이 땅에 살면서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다실 한 번 가려면 미세먼지를 뚫고 가야 함을 뜻하기에,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다.


   위에서 짧게 몇 집을 언급하는 동안에도 나의 취향이 확고히 드러나듯, 집을 짓는다는 건 자신의 취향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건축가의 섬세한 감각을 동원해 '어디에서 닫고 어디에서 여는지를 결정'하고 조율하는 일생의 작품이랄까. 저자는 '건축가란 자칫 무신경하게 매몰될 뻔한 시공간을 찾아주는 사람이면서 가족 구성원 각자의 행복과 연대 역시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했는데, 내 집도 안 지어봤으면서 벌써부터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그리 느꼈기 때문이리라.



집을 지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쌓인다. 새로운 즐거움도 하나둘 약속처럼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집을 한 채 또 짓고 싶다. 이번에는 콘크리트 대신 나무 집을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집과 삶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더 좋은 삶을 계획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집 짓기'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 본서 95쪽


   건축가가 본인이 살기 위해서 혹은 건축주와 합심해서 지은 멋진 집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건만, 책을 덮고 나니 저자 정성갑의 글솜씨가 뇌리에 남는다. 말끔한 글솜씨를 가진 것도 모자라 실속 또한 놓치지 않는데, 두 번째 챕터 끝자락에 실린 '나만의 건축가를 찾아서'와 책 끄트머리에 실은 Dialogue '집 짓는 시간이 행복하려면'에서는 건축가와 집을 짓는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잘 간추려 담아놓았다. 이분은 흔한 음식도 흔하지 않게 소개할 것만 같다. 멋진 집에 멋진 글이 잘 만난, 참 멋진 책이다. 저자가 '건축가가 지은 집' 외에도 패시브하우스를 다룬 콘텐츠도 기획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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