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까지 인류가 상상한 온갖 저세상 이야기
켄 제닝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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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러스 애덤스의 베스트셀러를 연상시키는 제목인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는 다루고 있는 소재도 그렇거니와 미국의 유명 텔레비전 퀴즈 쇼 [제퍼디Jeopardy!]에서 74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한 저자 '켄 제닝스'의 범상치 않은 이력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은 영화, TV, 책, 음악, 연극, 신화, 종교, 게임, 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 등장한 수많은 사후 세계 중 100곳을 엄선해 여행 가이드처럼 소개하고 있다. 나는 저자가 분류해 놓은 일곱 가지 범주 중 첫 번째 '신화'와 두 번째 '종교'까지만 순서대로 읽고, 나머지 범주인 '책', '영화', '텔레비전', '음악과 연극', '기타 다양한 사후 세계들'은 읽고 싶은 파트부터 읽어나가며 완독했다. 그러다 보니 읽은 부분을 또 읽기도 하는 바보 같은 짓을 상습적으로 하긴 했지만(...),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어서 반복해서 읽어도 나쁘지 않았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양하듯,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도 다양하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신화를 낱낱이 뜯어보면 비슷한 점이 많듯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각 나라의 신화 속 사후 세계 이야기 역시 닮은 구석이 보인다. 걔 중에는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것도 있는데, 일본 신토 신화의 사후 세계인 '요미'에 얽힌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무척 유사하다. 또한 켈트족의 사후 세계인 '별세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향연을 위해 죽인 사냥감 멧돼지가 매일 다시 살아나듯, 스칸디나비아 신화 속 사후 세계인 '발할라'에서는 멧돼지 세아흐림니르가 밤이면 다시 생겨나 매일 밤 요리사 안드림니르에 의해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진다.

   신화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의 유사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사후 세계를 지상에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와 아프리카 전통 종교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영원한 진보'를 중시하는 모르몬교는 지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국에서도 부지런히 노동하고, 배우고, 성장하며, 가족 간의 유대 역시 지속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전통 종교에서 사후 세계로 등장하는 '조상들의 세계'에서 망자는 여전히 벼농사를 짓고, 농담을 즐기면서 조상들과 즐겁게 지낸다. 이곳에서 소년들은 염소와 양을 몰고, 여성들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남성들은 소를 돌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이승의 풍경과 영락없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재미 삼아 내가 사후 세계를 선택해서 갈 수 있다면 어떤 곳으로 가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며 읽었더랬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 뜨고 있지 못할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로 에워싸인 불교의 '서방정토'? 매일 어린이로 시작해 청소년, 성인, 노인에 이르는 인생의 네 단계를 통과하며 각 단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유대교의 '간에덴'? '노래의 집'을 거쳐 시간의 종말이 오면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새 우주에서 부활해 영원히 15세에 머물며 살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사후 세계?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살았던 모든 인류가 일시에 눈을 떠 유명인과 뒤엉켜 생활할 수 있는 소설 <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의 '리버월드'?

   매력적인 곳이 많아서 선택하기가 꽤 어렵다. 결국 뭐가 되었든, 이슬람의 지옥 '자한남'과 낙원 '잔나'는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일흔두 명의 처녀'로 대표되는 무슬림의 낙원도 그렇고, 자한남에 있는 저주받은 망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있는 이 사후 세계들은 저자의 말마따나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적 전통이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에도 형평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니, 참 골치 아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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