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 - 명작 영화의 촬영지로 떠나는 세계여행 여행이 좋다
세라 백스터 지음, 에이미 그라임스 그림, 최지원 옮김 / 올댓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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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워 오브 도그](2021)에서 카우보이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미국 몬태나의 드넓은 초원 위에 무시로 서서, 저 멀리 자리 잡고 있는 산등성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자신과 브롱코 헨리 외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울부짖는 개' 그림자를 보며 서 있는 필에게선 때때로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마초적이고 강인한 겉모습 뒤 비밀을 감추고 있는 필처럼, 공교롭게도 필이 서 있는 이 광활하고 멋진 초원은 사실 미국 몬태나가 아니라 뉴질랜드이다.


   엊그제 다 읽은 <영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에 소개된 영화 중에도 영화 설정상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다른 경우가 다수 보였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에서 주인공 휴 글래스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부상 당한 몸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참하게 발버둥 치며 320km라는 긴 거리를 진짜로 이동했던 곳은 영화가 촬영된 캐나다 앨버타주가 아니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미주리강이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는 델마와 루이스가 아칸소에서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거치며 미국을 횡단하는 여정이 주된 내용이지만 실제 촬영은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대부분 이루어졌고, 실존 인물의 전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역시 시각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들만 로렌스가 실제 활약했던 요르단에서 촬영했을 뿐 영화의 대부분은 모로코와 스페인에서 촬영되었다.



   위 영화들과는 다르게 영화상의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일치하는 영화도 꽤 등장한다. 스파이크 리는 리얼리즘을 위해 브루클린 북부 베드퍼드-스튜이버선트의 한 구획을 아예 통째로 빌려 영화 [똑바로 살아라](1989)를 촬영했고,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1958)의 주무대인 샌프란시스코는 배경임과 동시에 이 자체가 메타포로써 기능한다. 앞서 언급한 [델마와 루이스]와 똑같은 로드 무비 장르면서 영화 속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일치하는 호주 배경의 [프리실라](1994)와 체 게바라의 수기를 바탕으로 그 여정을 최대한 그대로 따라가며 촬영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 같은 작품도 있다.


   <영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는 영화 설정상의 배경과 실제 촬영지의 차이점을 파헤치기 위해 쓰인 책은 딱히 아니다. 이 책은 감명 깊은 명작 영화 25편의 감흥을 실제 촬영지나 모티브가 된 장소에서 이어 나갈 수 있게 안내해 주는 책이다. 보통 이런 책은 사진으로 현장감을 더해주기 마련인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일러스트로 대신했다. 이런 독특한 점 때문에 읽어본 책인데, 뭐랄까... 일러스트가 훌륭하긴 하지만 영화 촬영지의 생생함을 전달해 주기에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멋진 일러스트와 더불어 촬영지의 사진이 같이 수록되었으면 더 풍성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한 편당 내용이 가볍게 읽기에 딱 좋은 분량인데, 영화 제작 뒷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글밥이 좀 더 많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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