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사랑한 바다 -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바다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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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다의 색상인 푸른색을 사랑했습니다.

누군가 뒤피의 청량한 푸른색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마치 눈으로 포카리스웨트를 마신 것 같다."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 본서 34쪽


   본문의 저 누군가는 라울 뒤피의 [천사들의 해변](1927)을 보고 한 말일까? 흠, 나와는 생각이 다르군. 나는 라울 뒤피의 작품을 봤을 때보다 본서 <화가가 사랑한 바다>의 표지로도 사용된 에드워드 호퍼의 [큰 파도](1939)를 보았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눈으로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있는 듯 그 청명한 푸르름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기자기함과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는 라울 뒤피의 그림도 분명 매력적이긴 하나, 나는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화풍에 좀 더 마음이 간다. 물론 밝게 빛나는 바다와는 대조되게,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부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느껴지는 현대인의 단절과 고독감을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갑갑한 마음을 힐링하고 싶어 펼친 책이었건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캔버스 속 바다에 우울한 정서를 쏟아낸 화가들의 작품에 마음이 더 움직였다. 위에서 언급했듯 바다에 외로움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라든지, 이별의 아픔과 고독을 담아낸 뭉크,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광막한 바다를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몽환포영, 어머니의 사망 이후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베르나르 뷔페의 먹구름 가득한 바다 그림 등. 책 속에서 쓸쓸함을 간직한 바다 그림에 계속 이끌리는 나를 보아하니 왠지 지금 내가 가진 바다가 어떤 모습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작은 배와 같다.

파도는 계속해서 덮쳐오고 또 밀려가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 파도에 휩쓸려 때로는 부딪히고 다시 일어서면서

간신히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이다."


- 베르나르 뷔페, 본서 131쪽


   이 책의 장점을 하나 꼽자면, 글이 적다는 거였다. 평소 미술책을 읽을 때는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는데, 이 책은 그 반대였다. 글밥이 적을 뿐만 아니라 담백하기까지 해서 그림에 온전히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에드워드 호퍼, 에드바르 뭉크,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 도슨트 정우철의 짧은 작품해설이 같이 실린 18명의 화가 외에도 알프레드 스테방스의 [월광](1885)처럼 해설 없이 작품만 실린 화가 아홉 명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아홉 명 중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비센테 로메로 레돈도라는 화가의 작품들은 특히나 아름다워 기억에 남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지만, 이 책을 읽은 후 인상 깊었던 화가를 단 한 명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반 아이바좁스키를 꼽겠다. 책 속의 18인 중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는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작품 [일몰](1866), [무지개](1873)를 보고 있노라면 '바다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님이 확연히 느껴진다. 또한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연 거장은 이래서 거장이라고 하는 거구나' 싶다.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가졌음에도 '미완성의 바다'라고 자기 작품을 칭한 이반 아이바좁스키나, 외롭고 고독할 때면 바다를 찾아 그림을 그렸던 책 속의 화가들을 보며 그들도 결국 나와 똑같은 미완성의 인간이라는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 은근히 위로를 준 책, <화가가 사랑한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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