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이식 아트 2.0
프랑크 죌너 지음, 최재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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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화가가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길 원한다면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창조자다. (중략)

사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이나 실재로서, 혹은 상상의 산물로서 존재하며 화가는 그것을 먼저 자신의 마음으로 파악한 후 손을 통해 그려낸다.


- <회화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연초마다 으레 찾아오는 무기력감에 빠진 요즘의 내게, 누군가 옆에서 위의 말을 했다면 "그래, 말은 쉽지. 말로는 뭔들 못해?"라고 맞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을 한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서, 지난 주말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읽다가 저 구절에서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 죌너가 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타셴(TASCHEN)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 중 하나이다. 1985년부터 출간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인데, 나는 이번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처음 접했다. 2005년 한국어판보다 판형이 커졌다는데 그 덕분에 레오나르도의 대표작을 더 큰 페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행운이었다.


   이 책은 96쪽이라는 적당한 분량에 레오나르도의 일생과 대표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견습 시절: 피렌체 - 초기의 미완성 작품 - 새로운 출발: 밀라노 - 자연과학자 레오나르도 - 밀라노의 궁정화가 레오나르도 - 편력 시대 - 거장들의 대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 만년'이라는 여덟 개의 목차로 깔끔하게 나누어져 있다. 전체 내용이 그리 짧지도, 그렇다고 장황하게 긴 편도 아니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쉼 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1452년 피렌체 공화국의 빈치에서 서자로 태어나 1469년에 피렌체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견습생으로 전문 미술 교육을 받은 지 대략 3년 만에 직업화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그 후 1519년 눈을 감을 때까지 피렌체, 밀라노, 프랑스, 베네치아, 로마 등지에서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및 군사 고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거듭난다.


   라파엘로가 초상화 제작의 규범으로 삼았을 정도로 대단한 작품인 [모나리자]를 비롯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수태고지], [암굴의 성모], [최후의 만찬], [흰 담비를 안은 귀부인]과 같은 레오나르도의 여러 대표작을 큰 도판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굉장한 대표작보다 내 마음을 더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이는 바로 그의 천재적인 드로잉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습작 및 스케치이다.


드로잉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순수한 관심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짧고 강한 펜의 선묘를 사용하여 대상의 동세를 잘 표현한 작지만 눈길을 끄는 스케치였다. 이러한 드로잉은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면서 레오나르도의 개성 있는 회화적 상상력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드는 자유로운 연습 과정이기도 했다.


- 본서 8쪽


   원근법 습작, 동물 습작, 자연 풍경 습작, 구도 스케치 등 회화를 제작하기 위한 드로잉을 비롯해 비행기 스케치, 군사 무기 도면, 건축 설계도, 풍경 조감도, 인체 비례 및 해부학 드로잉 등 레오나르도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이를 드로잉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 과다한 열정이 그의 미술 업적에는 독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열정 가득한 자연과학자스러운 성향은 수학과 기하학에 몰두하느라 회화 작업을 거북이 속도로 진행하게 할 정도였고, 주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천천히 작업하는 화가를 위한 콩쿠르가 있다면 레오나르도가 분명 우승할 것이다"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호기심과 열정 때문에 미술에 쏟을 시간과 열정을 빼앗겼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나는 그의 이런 면모 덕에 레오나르도의 회화 작품이 동시대에 활동한 다른 화가들보다 한층 더 뛰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나리자]의 굉장한 입체감을 보라. 리자 여사가 신비로운 미소로 금방이라도 그림에서 튀어나와 내 손을 이끌 것만 같다. 이렇게 빼어난 3차원적인 표현은 동시대의 그 어떤 화가도 넘볼 수 없는 경지이지 않은가.


   연초의 무기력증에서 어떻게 벗어나 볼까 하다가 읽어보게 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수준급의 드로잉 실력을 키워나갔다. 레오나르도의 엄청난 소묘력 뒤에는 아마 수많은 습작 시간으로 채운 노력이 있었겠지? 매사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에서 빚어진 시행착오로 결국 망쳐버린 [앙기아리 전투]와 같은 사례를 비롯해 과한 열정으로 너무 많은 것에 손을 대고 미완성으로 남겨둔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다양한 연구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가게 한 그의 추진력이 참 부럽고, 그 원동력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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