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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는 비건 집밥 -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국, 찌개, 반찬 52
김보배 지음 / 길벗 / 2021년 12월
평점 :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맛있는 한식을 먹기란, 참으로 요원한 일일까요? 그동안 나는 한식으로 채식 집밥을 챙겨 먹을 때 기존의 한식 레시피를 나름대로 변형 시켜 맛이 있든 없든 그냥 먹었어요. 이 맛이 건강한 거라고, 이 맛이 지구를 살리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말이죠. 하지만 최근 나는, 맛없는 비건 한식 집밥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닷...!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레시피 책 <오늘부터 우리는 비건 집밥>으로요!
그거 아세요?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기란 정말, 무척 힘들어요. 나는 채식주의를 비건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겨우 2년 정도 유지했을 정도로 한국 음식이나 한국 음식 가게는 비건 친화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김치를 왜 안 먹느냐고, 그렇게 좋아하던 국수는 왜 안 먹으려고 하냐고, 빵이랑 아이스크림은 왜 입에도 대지 않느냐며 집 안팎에서 나를 들들 볶았습니다(요즘 비건 빵집이나 비건 아이스크림 가게를 검색하면 영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드문드문 검색되지요. 내가 채식을 시작했을 때 비건 빵집은 존재하지 않다시피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점차적으로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뭐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방금 말한 김치, 국수 같은 걸 먹기 위함이지 적극적으로 달걀 요리를 먹는다든가 해산물을 즐기진 않았습니다. 왜 이리 까탈스럽게 구느냐, 왜 그리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냐, 이런 말이 듣기 싫어서 변경한 최소한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 최소한의 타협은 이따금 플렉시테리언이 되는 걸로 조금 더 확장된 상태입니다.
그동안의 채식 경험을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내가 <오늘부터 우리는 비건 집밥>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너무 벅차 울먹였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하고 싶어서였어요. 주변의 상황과 계속해서 타협하는 나를 보며, 채식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었는데...... 비건 한식이라니! 그야말로 단비처럼 나타난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Vegan'의 철자를 이용해 다섯 파트로 나누어놓은 목차와 요리 이름마다 센스 있는 소개 문구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게 인상적인데요. 순조로운 출발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비건 한식의 기본이 될 채수 레시피에서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표.고.버.섯.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이슈 이후 먹거리에 관련된 방사성 물질 정보에 관심이 생겼는데요. 그중 가장 충격적인 건 내가 평소 즐겨 먹었던 표고버섯이 세슘을 잘 흡수한다는 사실이었어요.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과 한국의 표고버섯에서 세슘이 자꾸 검출된다는 사실은 더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에 유통되고 있는 표고버섯 세슘 검출 이슈는 잊을 만 하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충분히 우려되는 일이었죠.
표고버섯은 감칠맛과 향에 있어 독보적으로 뛰어난 재료인지라, 그동안 채식 집밥을 먹을 때마다 표고버섯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표고버섯은 안전성이 불투명하니 지금까지 먹는 걸 지양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 제안하는 한식 채식 레시피의 기본인 채수에 표고버섯이 빠지지 않았네요. 이 맛있는 표고버섯을 대체할 식자재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자가 이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건 집밥을 시작하려면, 안전한 표고버섯을 구하거나 이를 대체할 식자재를 찾는 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군요.
너무 먹고 싶은데 채식용 레시피가 없어서 제대로 못 먹고 있다가 이 책 속에서 발견하고 눈물을 훔치며 보았던 레시피가 여럿 있는데요. 그건 바로 '순두부찌개', '순대 없는 순대 볶음', '달걀물 필요 없는 애호박전'이었어요. 돼지고기나 해산물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순두부찌개라니! 순대 없이도 순대 볶음 맛이 나는 요리라니...! (크흡) 달걀물을 설탕으로 대체하는 애호박전 레시피를 보며 채식 요리를 만드는 건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채식주의자가 되는 과정처럼 말이죠.

책 속 레시피를 보고 있으면 얼른 따라 해보고 싶은 레시피가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양념게장 맛이 나는 '천사장', 닭죽 맛이 나는 '닭 없는 닭죽', 해물찜 맛이 나는 '새송이 콩나물찜' 등등 고정 관념에 매여 있던 나의 뇌를 계속해서 두드려주는 레시피들이 곳곳에 있어요. 거기다 채수를 우려내고 난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생선 없는 무조림'이나 '비건포차 잔치국수'와 같은 레시피는 가성비까지 좋아 보여서 더욱 따라 해보고 싶네요(아 맞다, 표고버섯......). 안전한 표고버섯을 아직 찾지 못해서, 채수나 표고버섯이 없는 레시피 위주로 일단 만들어봐야겠어요(세슘 걱정 없는 표고버섯 판매처를 알고 계시면 귀띔 좀 해주세요!).
오늘 책에 있는 '포두부 진미채'를 만들어 먹어 보았는데요. 집에 있는 비건 마요네즈로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는데, 결과는 대성공! 포두부의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잘 어우러져 참 맛있더라고요. 첫 도전이 무척 만족스러웠기에, 이 책으로 심심하고 단조로웠던 채식 식단에서 벗어나게 될 거란 기대감이 더 커져서 제 마음은 지금 설렘으로 꽉 차 있어요. 저자나 나처럼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혹은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이따금 비건 레시피로 만든 집밥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예요. 이렇게 맛을 포기하지 않은 비건 요리라면 더더욱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