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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클럽 회원증
캐서린 맥과이어 지음, 방진이 옮김 / 황소걸음 / 2021년 8월
평점 :
나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채식을 지향한 지는 꽤 되었지만, 이렇게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건 여전히 조심스러워요. 채식을 지향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한데요. 대체로 좋지 않은 쪽으로 다양한 편입니다. 우리 가족들조차 내가 채식주의를 고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정은커녕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런 태도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채식주의자로 살아오며 저는 여러 번 현실과 타협해야 했고, 지금도 종종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걸 방지하고자 잠시 채식주의를 뒤로 밀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장 받는 스트레스도 크긴 하지만, '이러면 내가 채식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머리가 무거운 밤을 보내곤 하는 게 더 힘들지요.
이렇게 채식주의자이면서도 종종 흔들리곤 하는 나는, 비건을 지향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채식 클럽 회원증>을 읽어보았어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귀여운 이 책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이제 막 결심한 초심자를 위한 유용한 정보로 구성되어 있어요.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 초반에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는데요. 그중 '육식주의'의 개념에 관해선 처음 접했어요. 사회심리학자 멜러니 조이가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전 세계의 육식 문화는 특정 동물을 먹도록 무의식적으로 답습된 사회적 편견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육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함을 꼬집고 있었어요.

<채식 클럽 회원증>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채식 음식과 식재료, 채식 레서피에 관한 정보를 알차게 담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요리에 취미를 못 붙여서 해외의 채식 음식이나 레서피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며 깊이 파지는 않았어요. 그저 기존에 흔히 통용되고 있는 채식 음식을 기본으로 각종 채소를 기반으로 한 샐러드나 월남쌈, 뮤즐리와 그래놀라, 여러 곡물과 콩류, 그리고 원래는 채식 레서피가 아닌 한식을 변형해서 먹어왔지요. 요리라고 해봤자 '원재료 그대로 먹는 게 미덕이다'라며 렌틸콩과 병아리콩, 퀴노아를 그냥 밥에 넣거나 샐러드, 혹은 카레에 넣어서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요. 하지만 여러분, 이 <채식 클럽 회원증>에서 간략히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해외 음식들만 봐도 입이 쩍 벌어질 겁니다. 나라마다 채식 음식이 꽤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다양해서 놀랐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시도하지 못한- 대두로 만든 인도네시아의 템페, 레바논의 전통 샐러드 팟투시, 라틴아메리카의 토스타다 등 맛있어 보이는 채식 음식이 한두 개가 아니랍니다.
특히 병아리콩의 다양한 활용법을 알게 된 점이 무척 좋았는데요. 병아리콩 물로 달걀흰자처럼 거품을 만들어 머랭, 치즈, 마요네즈를 만들 수 있다니...... 이건 신세계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병아리콩 가루로 오믈렛을 만드는 레서피도 나와 있는데, 이 오믈렛 레서피를 읽은 순간 그 맛이 어떨지 너무 궁금해서 얼른 도전해보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이 책은 채식주의자가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에요. 저자는 채식 완전단백질 조합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식재료를 살 때 어디서 돈을 아끼고 어디서 돈을 제대로 지출해야 할지에 관해 충고하며, 채식 음식 특성상 빨리 허기지는 배를 위해 든든한 채식 간식을 어떻게 구성할지 제대로 추천할 뿐만 아니라, 지인들과의 외식이나 해외여행에서 겪을 난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같이 고민합니다. 이런 디테일에서 20년 동안 행복한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는 저자 소개가 허풍이 아님을 확실히 느꼈어요.

건강한 채식을 하는 사람은 육식하는 사람에 비해 각종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더 안전하다는 걸 아시나요? 채식을 하면 몸에 영양이 불균형하고 근육이 잘 안 생긴다는 낭설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은 참 놀라워요(채식과 육식 중 어느 것이 근육과 운동 능력에 도움이 더 되는지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게임 체인저스'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육식하는 사람들이 <채식 클럽 회원증>과 같은 채식에 관한 서적에 관심을 가진다면 비록 그들이 가진 가치관을 하루아침에 바꾸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채식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끔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때때로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완벽한 채식 식단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 본서 178쪽 -
나는 엄격한 비건으로 몇 년 동안 지내다가 현실과 타협해 비건에 가까운 페스코 베지테리언(유제품, 달걀, 해산물은 먹는 채식주의자)으로, 거기서 더 타협해 현재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기본으로 이따금 플렉시테리언(가끔 육류를 먹는 채식주의자)이 되는 걸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책 초반에 있는 '채식 클럽 회원이 자랑스러운 이유'를 반복해서 읽으며 초심으로 돌아가 좀 더 엄격하면서도 행복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어요.
행복한 채식주의자가 되려면,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채식 음식으로 식단을 만들어야겠죠? 앞서 말했듯 나는 여기저기 찾아보지 않고 나름대로 구성한 식물성 음식으로 -이따금 맛없게 완성된 나물과 샐러드를 질겅질겅 씹으며- 채식 식단을 꾸려왔는데요. 이 <채식 클럽 회원증>을 읽고 나니 책 속에 소개된 채식 식재료와 레서피뿐만 아니라 내가 아직 모르는 이국적인 채식 레서피가 더 있는지 찾아보고 싶단 생각이 -드디어- 드네요. 이와 더불어 한식 비건 레서피도 열심히 찾아서 나의 채식 식단을 좀 더 풍성하게 업그레이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