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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1~2 세트 - 전2권 ㅣ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빗'은 '이메리카'라는 나라의 '버니어'시 외딴 산골에 있는 농장에서 돼지로 태어났다. 그런데 데이빗에겐 다른 돼지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지능'. 높은 수준의 지능과 말을 할 수 있는 발성 기관을 가진 채 태어난 특별한 돼지였던 것이다.
이 돼지농장에 사는 꼬마 소년 '조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이빗을 아빠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고 직접 '데이빗'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조지 가족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 데이빗은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사람으로 여긴다. 조지 가족은 이에 대해 놀라워함과 동시에 근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조지의 아빠 '제임스'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조지와 데이빗을 지켜본다. 농장에서 작은 해프닝을 겪으며 아빠는 어린 조지에게 데이빗의 정체를 그 어디에도 발설해선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더 단단히 이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조지와 데이빗은 집이 위치한 버니어의 깊은 산골에 틀어박혀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지루한 삶을 받아들이려는 데이빗과는 다르게 조지는 이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던 와중 조지는 버니어를 방문한 유명 서커스단인 '이카루스 서커스단'이 세계 최대의 도시 '빅요크'에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기회다 싶었던 조지는 데이빗을 설득해 서커스단에 합류해 빅요크로 떠나게 된다.
빅요크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며 유명해진 데이빗은 TV에 출연하고 광고도 찍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조지는 데이빗의 매니저로 일하며 돈과 명성에 흠뻑 취해 바쁘게 지낸다. 한편 데이빗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자 '돼지는 사람이 아니다(Pig is not person)'라는 구호 아래 모인 반 데이빗 단체인 'PIP' 시위대의 운동이 거세진다.
서커스 공연의 마지막 날, 데이빗은 인권운동가 '캐서린'이 객석에서 던진 질문에 동요하게 되고, 자신이 왜 빅요크로 오기로 결심했는지를 다시금 떠올린다. 그러면서 조지와 데이빗은 갈등을 빚게 되고, 캐서린이 이끄는 인권단체인 '스피릿'에 합류하며 이메리카의 정치인들의 권모술수에 휘말리게 되는데... 데이빗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위에 요약해놓은 이야기는 만화 <데이빗 1~2 세트>의 줄거리다. <데이빗>은 작가 d몬이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웹툰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작품이다. 현재 웹툰을 잘 안 보는 나는 이 만화를 단행본으로 처음 만났다.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의 도입부가 내 흥미를 끌었고, 읽어보니 꽤 재미있는 만화였다. 책 속에서 일련의 힘든 사건을 겪으면서도 데이빗은 자신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인정해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며 데이빗은 자신이 걷는 길을 통해 점점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고 정의를 내린다.
사람과 똑같이 사고하고 말하는 돼지를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라. 나는 <데이빗>을 읽은 후 이 질문에 대해 며칠을 생각해보았지만,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릇의 모습이 아무리 달라져도 그릇 속에 담긴 물의 본질은 그대로일 거란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오긴 했지만, 데이빗과 같은 돼지가 정말 눈앞에 있다면 내가 그 돼지를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는... 그런 상황이 진짜로 되어봐야 나도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선 절대 속단하면 안 되고, 그렇기에 만화 속에서 데이빗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데이빗을 반대하는 사람들 양쪽의 입장 중 어느 쪽이 더 나쁘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분명, 모든 사람이 데이빗 씨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죠.
그렇기에 우리가 데이빗 씨를 돕는 겁니다.
사람과 같이 사고할 수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단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인권을 박탈해 버리는
그 야만성에 맞서면서요.
- 1권, 193쪽 -
책을 읽는 동안 데이빗은 왜 꼭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지, 답답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도 좀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다음과 같은 생각과 물음들이 떠올랐다.
만화 속에서 데이빗은 지능이 꽤 높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한 데이빗은 어렸을 때 이미 제임스에 의해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어미가 누구인지도 보았고, 그런 정보를 습득하며 자신의 모습이 인간과 몹시 다르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지능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마치 '자연스럽게'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만화는 은연중에 지능은 인간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전제를 해놓고 이야기를 만든 건 아닐까? (그리고 정해진 서사를 위해 그런 제한된 가치관을 꼭 고수할 수밖에 없었을까?) 데이빗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지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돼지들과 다르게 자신은 지능이 있어서 생각도 하고 말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볼 생각은 대체 왜 처음부터 해볼 수 없었던 걸까? 더구나 1권 말미에서 캐서린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도 데이빗은 계속해서 사람으로만 인정받으려고 고집 피우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 나오는 인조인간 데이빗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것. 만화 속 데이빗 또한 이야기 중간부터 캐서린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긴 하지만 그건 이야기 중간부터 생긴 흐름이라 이를 데이빗이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근원적인 이유라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한마디로, 데이빗이 왜 꼭 '사람'으로만 인정받으려 하는 건지 그 근원적 동기가 약해 보인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 끝에 이 만화의 이야기 설정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려두었다. 데이빗은 사고할 수 있는 '지능'을 갖고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욕망'까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라고. 돼지로 태어났지만 높은 수준의 사고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교만과 자기기만을 서슴없이 행하는 욕망덩어리인 일개 '사람'처럼 되길 원하기만 하는 한계를 보여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만화 속 대사에서 언급하고 있듯 지능이 높은 존재를 사람으로 볼 수 있다면, 그럼 지적장애인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분명 읽히기는 술술 읽히는데, 담고 있는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은 만화이다. 특히 말미의 '멱따개'라는 도축업자와 데이빗의 대화는 내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쿵 던져주었다. 사람은, 대체,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
읽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책 마지막의 '데이빗' 이름이 적힌 장면이 머릿속에 콕 하고 박혀 계속 맴돌고 있다. 2권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데이빗'은 1권 첫 번째 페이지의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라는 물음과 같은 함의를 가지고 있는, 울림이 큰 대명사처럼 이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