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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인간 -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ㅣ EBS CLASS ⓔ
권수영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평점 :
벌써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여덟 가지 마음 돌봄의 기술의 영어 앞 글자를 순서대로 모으면,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이 마음 돌봄의 기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고 상호작용한다.
-본서 289쪽-
<치유하는 인간>의 마지막 장에 적힌 위의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또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리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지 스스로 신기하면서 놀랍기도 했다. 주로 슬픔에 가득 찬 눈물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깜짝 선물을 받고 놀라움과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과도 같았다.
<치유하는 인간>을 읽는 동안 나는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empathy(공감)' 챕터에 나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상담 사례를 읽다가 눈물을 쏟아냈고, 'epoche(판단 중지)' 챕터의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인용 부분에서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감동적으로 느꼈던 장면을 읽어내려가며 또 눈물을 흘렸으며, 'lamentation(애도)' 챕터에서 한국의 장례문화인 '염'을 설명하는 구절에선 펑펑 울었다. 또한 'network(관계망)' 챕터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관한 일화를 읽다가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처음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은 두 번째 챕터인 'empathy'에서였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며 흘렸던 눈물 중 아마 가장 서러운 감정으로 흘린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내 감정의 웅덩이 밑바닥으로 내려와 같이 공감해준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자신을 뒤돌아보고, 과거 내 경험 속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반드시 누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애도의 시간과, '안전감의 조건(conditions of safety)' 없이 지내오며 제대로 된 해소의 울음 한번 터뜨리지 못한 채 버텨온 나날들, '조건부 자기 존재감' 속에 허우적대야 했던 지난날들이 내 폐부에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내게 상처를 끝없이 안겨주었던 가족, 나에게 깊은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절친과 친구,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조차 몰랐던 예전 연인 등등.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과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표면으로 '거짓 자기'를 만들어놓고 내 안으로 들어가 심연 속으로 한없이 침잠했던 나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렇게 이상하고 미운 가족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도, 어쩌면 모두 상처받은 마음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주변인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연민 같은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놀라운 내적 변화였다.
내가 받은 상처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깨끗이 지우려고, 마치 상처받은 적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쳤던 내 모습이 어리석었다는 걸, 나는 'growth(성장)' 챕터 속에 나온 30대 젊은 부부의 사례를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받은 상처들을 제대로 '수용(acceptance)'하지도 못한 채 상처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거나 특정 일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려고만 노력했다(그렇게 하면 내 상처가 없어질 거라는 듯).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런 상처 속에 있는 나를 공감하려고 노력하거나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으니, 그 어떤 상처도 제대로 치유된 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책은 어설프고 바보 같은 나를 '안아주기(holding)'로 시작해 '성장(growth)'으로 인도하는 8가지 마음 돌봄 기술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치유하는 힘'을 조금씩 이끌어내며 내가 가진 상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힌트를 주었다. 글 서두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내가 흘린 눈물은 기쁨의 의미인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건대 '자조 모임'에 들어온 중독자가 받는 환영의 박수를 나 자신에게 선사하는 의미의 눈물이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제대로 된 회복의 여정 위에 오른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박수 말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종교인의 천태만상을 봐오며- 종교인에 대해 썩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까닭에, 책 속에 종교적인 언급이 살짝만 나와도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구절이 몇 번 나왔음에도 눈살을 찌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저자가 적절한 비유를 위해 종교적인 언급을 할 때 요란스럽지 않게 한 것도 한몫했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치유'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충분히 느꼈기 때문임이 더 컸다. 달을 보라며 가리킬 때 나는 장미꽃으로 가리키는 걸 즐겨하지만 다른 사람이 국화꽃으로 가리키거나 히아신스로 가리킨다 한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달의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나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사람을 찾아가 힘껏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힐링(healing)'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 기회가 과연 있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그 의미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도 불분명한 '힐링'과 '공감'이란 단어에 대해 이렇게 명확하게 이해해본 적이 없다. 지금껏 말이다. 이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품 안에서 힐링을 느끼는 그 첫 번째 순간처럼, 나도 첫 번째 힐링의 순간을 맞이한 기분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과거의 그림자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와중에, 상처를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했는데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존재하는 치유의 힘, 힐러 본능을 믿고 진정한 치유를 향해 발을 떼는 일이 그리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한 걸음은 뗀 것 같다. 나의 치유와 성장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