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기예르모 데쿠르헤즈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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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남자아이, '로렌조'.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사할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에 멋진 풍경들이 스쳐 가고 있음에도 우울한 마음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네요.


   도심과 떨어져 덩그러니 홀로 자리 잡고 있는 새로운 집에 도착한 로렌조는 자기 방이 될 2층 오른쪽 방에서 오래되어 보이는 거대한 책상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여기저기 살펴보다 책상의 숨겨진 공간 속에서 미스터리한 노트 한 권을 발견합니다.


   노트 속에는 그림과 함께 색종이를 오려 붙여 완성한, 네 가지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어요. '청동 드래곤', '장화와 모자', '공장', '꿈의 여행자'가 바로 그것인데요. 첫 번째 이야기인 '청동 드래곤'을 읽은 직후 로렌조는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생각에 잠겨 있던 로렌조는 엄마의 부름으로 아래층에 내려가던 차에 문득 천장의 용머리 장식 전등 중 하나가 깨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청동 드래곤' 이야기의 힌트를 얻게 돼요. 그건 바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 로렌조는 노트 속 몽환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책상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려봅니다. 밤이 깊어지도록요.



   노트 속에서 보았던 청동 드래곤을 마당에서 발견하고, 브로콜리 나무를 실제 거리에서 보는 등등. 노트를 계속 읽어나가며 로렌조는 노트 속에 등장한 사물들을 현실에서도 보는 신기한 체험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휴고'라는 친구도 생기고, 이사 온 동네의 과거에 관해서도 알게 되는데요. 매일 노트를 읽으며 그림을 그리고, 모험을 시도하기도 하는 로렌조의 모습은 낯선 곳으로 이사 온 아이답지 않게 무척 신나 보입니다.


   엄마의 부탁으로 따라간 양로원에서 로렌조는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또 다른 모험을 하기로 한 로렌조. 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놀라운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감명 깊게 읽은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은 그림체뿐만 아니라 완성도를 올려주는 디테일까지 멋진 그림동화책이었어요. 노트 속 이야기가 나올 때는 노란색 바탕으로 바뀐다는 설정이 꽤나 매력적이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다가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는데요. 책 속에 나오는 네 번째 이야기 '꿈의 여행자'를 읽을 때 코끝이 살짝 시큰해지더니, 로렌조가 노트의 주인과 만나게 되었을 때는 눈시울까지 붉혀버렸지 뭐예요. 훈훈한 해피엔딩인 건 분명한데 왜 이다지도 슬프게 느껴지는 건지, 처음엔 제 마음을 잘 헤아릴 수가 없었어요. 노트 속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로렌조처럼 말이죠.



   노트를 만든 '그레고리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노트(더 나아가 외로운 자기 자신)를 누군가가 찾아주길 바라며 그 노트의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몹시 저렸어요.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후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외로이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긴' 것 같은 나날들을 보내다 양로원에 가기로 결심하며 노트의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한 그레고리오 할아버지의 그 마음이... 아마 제 마음속 깊이 확 들어와 버렸던 것 같아요. 자신의 처지를 성냥갑에 갇힌 채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할 정도면,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요? 할아버지가 만든 노트를 재미있게 읽어준 것도 모자라 손수 그린 그림으로 재해석해 준 로렌조가 저는 -할아버지 못지않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을 정도로, 가슴에 많은 여운을 안겨준 그림책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안 그래도 요사이 '추억의 힘으로 살아간다'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던 차에 이 그림책을 읽어서 그런가, 왠지 더 유의미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추억도 추억이지만, 그것을 환기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색종이를 잘라 붙이든,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을 오래도록 남길 특별한 방법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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