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모나 에프 그래픽 컬렉션
노엘 스티븐슨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연재한 웹툰 <니모나>가 큰 인기를 얻어 바로 책으로 출간. 그 후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BOOM! 스튜디오에서 그래픽 노블을 작업. <니모나>로 아이스너 상과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곧 애니메이션 영화화를 앞두고 있음. 이뿐만 아니라 그래픽 노블 <럼버제인스> 시리즈로 아이스너상, 하비 상, GLAAD 미디어 상까지 수상. 지금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우주의 전사 쉬라'의 감독으로 활동 중... 믿기지 않겠지만, 이 모든 일이 28살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란다. 이 대단한 경력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아티스트 '노엘 스티븐슨'. 저자 소개와 책 소개란을 통해 위의 경력들을 읽으며, 저자의 이 화려한 경력에 호기심을 느껴 바로 <니모나>를 읽어보았다.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의복이나 건축 -외부- 양식을 보면 서양의 중세 시대인 것 같은데, 마법이 존재하는 걸로 봐선 확실히 판타지 세계이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꺼낸 캔 음료를 시원하게 마시고 피자를 배달시키며 거대한 화면으로 화상 전화를 하는 등 첨단 과학 기술이 동시에 존재한다. 참 묘한 배경의 판타지 세계이다. 이런 세계에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니모나'가 불쑥 등장한다. 니모나는 변신 능력자이고 그 능력을 보면 꽤나 수준급이다. 작은 새나 여우에서부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용까지, 존재하는 생명체라면 쉽게 변신할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겉만 흉내 내며 변하는 게 아니라 몸의 질량까지 함께 변한다. 기본적으로 생명이 없는 것으로는 변신할 수 없지만 그게 꼭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왠지 그쪽으론 웬만하면 변신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무생물로의 변신은 아마도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하는 듯). 그뿐만 아니라 깊은 상처도 쉽게 치유되는 능력 또한 지니고 있다. 니모나는 악당으로 명성이 자자한 '발리스터 블랙하트'의 조수가 되기 위해 그의 집에 무작정 들이닥친다. 조수가 필요 없다는 블랙하트를 졸졸 쫓아다니다 변신 능력자임을 보이게 되는데, 이에 흥미를 느낀 블랙하트는 니모나를 조수로 채용한다. 잔인한 방식을 좋아하는 니모나와 불필요한 사상자를 원하지 않는 블랙하트는 초반에 의견을 계속 부딪치지만, 여러 일을 함께 겪으며 점점 협력하고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한다.



   블랙하트는 악당으로 악명이 높지만 사실 그건 '법의 집행과 영웅적 행위에 관한 협회'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일 뿐, 알고 보면 진짜 악의 축은 협회이다. 이 협회에서 영웅으로 일하고 있는 블랙하트의 옛 연인 '암브로시우스 골드로인'은 협회의 진짜 정체도 모르고 있다. 악당으로 활동하는 블랙하트와 왕국 전사로서 영웅 대접을 받는 골드로인은 과거 한 사건 때문에 하나뿐인 연인에서 지금은 숙적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대지만 상대를 해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못하는, 그런 애증의 관계에 놓여있다. (니모나가 골드로인을 죽여도 되냐고 묻자 블랙하트가 숨도 안 쉬고 "안 돼"라고 바로 대답을 할 정도로 이 둘의 관계는 복잡미묘하기 그지없다. 아니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왜 천하의 원수처럼 증오하며 못 죽여서 안달 난 표정인 건데.-_-)


   협회가 흑마법에 주로 사용되는 금지 식물 '제이드루트'라는 맹독성 식물을 다량 보유한 채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블랙하트는 니모나와 함께 협회를 박살 내기로 결심하고 함께 작전을 개시한다. 먼저 방송국으로 가서 뉴스 진행을 가로챈 후 협회가 제이드루트를 다량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농작물 오염을 조심하라고 모두에게 경고한다. 그런 뒤 가볍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치료는 까다로운 독을 넣은 사과를 사람들 사이에 퍼지도록 심는다. 왕국에 이상한 전염병이 돌자 사람들의 협회에 대한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게 되고 결국 협회를 향해 분노하게 된다. 서서히 만천하에 드러나는 협회의 민낯과 음모, 블랙하트와 골드로인을 앙숙지간으로 만든 과거 '그 사건'의 전말, 그 와중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니모나의 비밀스러운 과거는 과연...?!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을 연상케 하는 개성적인 작화와 더불어 잔인한 내용이지만 가벼운 표현으로 포장한 다크 유머가 작품 전체에 골고루 자리 잡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밝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4칸 만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고 빽빽하게 작화를 구성한 1장과 2장은 아마추어티가 좀 나지만, 그다음 장인 3장을 시작으로 챕터를 거듭할수록 시원시원한 만화적 구성으로 작화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게 확실히 눈에 띈다.


   이렇게 재치가 가득하고 발랄하며 완성도까지 있는 작품이 대학생 때의 것이라니, 다 읽고 나서 하늘을 한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부러워서. 잘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아, 저자가 여자였지... 잘 될 숙녀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니모나에 관한 과거 설정을 두루뭉술하게 해놓은 걸 두고 설정이 쪼오끔 미흡하다는 걸로 단점을 -억지로- 지적해볼 수 있겠지만, 그저 시기하는 자의 질투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내가 지적한 단점이 설득력이 있을지 과연 의문이다(푸하하하).



   현재 잘 나가고 있는 29살의 아티스트 노엘 스티븐슨의 데뷔작이 궁금한 분들에겐 필독서가 될 만한 작품이다. 뭐 딱히 저자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이기도 하다.

   글을 끝맺으려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니모나>의 뒷면에 적힌 추천사 중 이 책의 핵심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을 참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니모나는 무한대의 강한 힘을 지녔음에도 자신보다 훨씬 미약한 블랙하트에게 접근한다. 외로움을 구원받기 위해서. 과거에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안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또 갈등을 겪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그리곤 블랙하트와 왕국을 구원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도, 가장 유명한 악당도, 유명한 영웅도,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존재가 없다면 과연 그 모든 게 소용 있을까. 이 작품에는 서로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 함의는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더 잘 와닿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