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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관한 모든 것
피에로 마틴.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박종순 옮김 / 북스힐 / 2020년 7월
평점 :
며칠 전부터 한 한국 대기업에서 새로운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사전예약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한 기사를 읽자마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오래된 전통인 '계획된 노후화'를 떠올렸다. 이 개념은 얼마 전 읽은 책 <쓰레기에 관한 모든 것>에서도 설명되어 있다.
1930년대, 미국과 세계 일부 국가는 1929년의 대공황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고, 런던에서는 효과적으로 소비자가 물건을 계속 사도록 만들기 위해 오래가지 않고 한정된 횟수만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된 상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소비지상주의와 더불어 역사상 유례없는 양의 쓰레기 발생에 책임이 있다.
- 본서 42쪽 -
매일같이 만나는 '쓰레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읽어 본 책 <쓰레기에 관한 모든 것>.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럽고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나름의 주제로 묶여 있다. 이 아홉 장에는 우리가 여태까지 만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쓰레기의 현 실태를 비롯해 쓰레기로 만들 수 있는 자원과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 그에 관련된 기술, 역사·인류학·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쓰레기 이야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에 관한 사실들, 위생에 관련된 쓰레기와 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본 쓰레기 등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러 통계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말이다.
예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눈을 더 반짝였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웃긴 이야기에 무릎을 치며 읽곤 했다. '똥 와이파이'라고 불리는 멕시코시티의 특별한 개똥 수거 시스템, 현재도 한창 연구 중인 '폐기물 없는 무한한 에너지'인 핵융합 발전(기다린 지 오래됐다고!), 플라스틱을 먹는 애벌레인 '갈레리아 멜로넬라', 익명으로 똥을 보내는 서비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 글들을 읽으며 말이다. 이탈리아 작가들이 쓴 책이라 그런가, 통계나 데이터가 대개 이탈리아와 유럽 기준이어서 아쉬웠던 반면 이탈리아식 위트로 보이는 유머가 책 속 여기저기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전체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가 않은 편인데, 이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산과 들판, 강, 바다, 하늘을 쓰레기로 오염시키는 것도 모자라 달과 우주에까지 폐기물을 만들고 있는 인간들. 그 종류는 너무도 다양하며, 여기엔 배설물처럼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쓰레기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이를 줄이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본인이 만든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매일 만들어지는 쓰레기의 양은 그 규모가 너무나 커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회의감이 들 정도다. 내 마음이 이렇든 말든 지구 위에서 번식하며 광범위한 면적에 걸쳐 바글바글 살고 있는 인간이란 종은 이 행성을 점점 쓰레기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진보'라는 명분 아래.
현재 인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며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 그 진보를 통해 우리가 끝내 거머쥘 가치는 무엇일까? 끝없는 성장 속에 쌓여가는 이 막대한 쓰레기양과 맞바꿀 만큼 귀중한 가치일까? 훗날 거대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 서 있을 후손들을 생각하면 유튜버 스티브 커츠(Steve Cutts)의 작품 'MAN'이 자꾸만 떠오른다. 미세먼지를 매일같이 마시며 미세플라스틱과 각종 유해물질 범벅인 식자재로 만든 요리가 식탁 위에 오르고 있는 지금 이 시기, 인간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통계 수치와 데이터가 필요한 걸까? 책 속에는 쓰레기도 자원이 될 수 있고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다. 우리는 과연 희망의 봉우리를 향해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될까?

불현듯 오래전 보았던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속 스미스 요원의 대사가 머릿속에 흩날리듯 돌아다니다 내 귓가에 속삭여온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깨닫게 된 사실을 말해주지. 네 종족을 어떻게 분류할지 생각하다 떠오른 거야.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주변 환경과 공존하는데 너희 인간은 안 그래. 어떤 장소로 이동하면 거기서 나는 자연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번식하고 또 번식하지. 너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장소로 퍼져나가는 거야. 이 지구에는 똑같은 패턴을 따르는 유기체가 또 하나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바이러스다. 인류라는 존재는 질병이야. 지구의 암이라고.
- 영화 [매트릭스]에서 -
그런 것일까? 우리는, 인류는, 정말 답이 없는 종인 걸까. 자신이 사는 행성을 쓰레기더미로 만들어가는 주제에 장엄한 우주의 관찰자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 평소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담은 책이어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고 난 후 쉬 끝나지 않는 사색에 계속 잠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