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어린시절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외 옮김 / 일므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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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내재과거아가 시킨 거냐?"

   이 말은 요즘 우리 집에서 종종 사용되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방금 네 내재과거아가 발현된 거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휘트니 휴 미실다인이 1964년 출판한 <몸에 밴 어린 시절 Your inner child of the past>을 읽은 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내재과거아'라는 말은 예전부터 스치듯 종종 들어와서 알고 있긴 했지만 이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는 미실다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깐, 내재과거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지난날의 정서적인 분위기에 묻혀 살면서 현재의 삶에 끼어들고 있는 어린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오로지 현재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어른이기도 하다.

-본서 11쪽-

실제로는 부모가 더 이상 곁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부모의 태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으며, 환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어린 시절에 대응했던 대로 이 태도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어른에게 그대로 남아 있는 내재과거아란 개념이 생겨났다.

-본서 17쪽-


   내재과거아란 어른이 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가 한때 거쳐 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말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태도를 지닌 부모 아래에서 큰 상처 없이 그럭저럭 잘 자라온 내재과거아는 어른이 된 우리와 별다른 갈등이나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깊은 상처를 주는 태도를 지속해서 겪으며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자라난 어른의 내재과거아는 어른이 된 우리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재과거아는 바로 후자에 속하며, 이러한 내재과거아를 잘 다루지 못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상 속 문제들을 더는 반복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지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 내재과거아는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아두었다.





   이런 상처투성이 내재과거아를 그냥 송두리째 뽑아내 버리면 깔끔히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병원에 정신 건강 관련 과가 지금 이렇게나 많아졌을 리가! 그대가 아무리 무시하고 잊으려 해도 그대가 거쳐 온 어린아이는 당신 안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미실다인의 말마따나 그대로 지속되는 걸 넘어 '무럭무럭 자란다'. 감정이나 마음에 관련된 문제는 납으로 만든 관 속에 넣어 시멘트로 묻어버린 방사능 폐기물처럼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묻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가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태도들 기억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태도이며, 우리는 이 태도에 익숙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현재 우리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본서 75쪽-


   미실다인은 부모의 특정한 태도는 처음엔 어린이에게, 나중에는 어른에게 정서적인 장애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내재과거아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태도 중 9가지를 제2부에서 살펴본다. '완벽주의', '강압', '유약', '방임', '건강 염려증', '응징', '방치', '거부', '성적 자극'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이 아홉 가지 부모의 태도는 우리가 부모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이 흔한 태도들이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이유는 '지나치게' 사용되었거나 '무리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아홉 가지 태도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다 보면 부모의 지나친 태도가 어떻게 확인되는지, 그리고 각각의 태도가 자식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저자는 제2부 서두에 실제로는 이 태도들이 혼재되어 나타나지만 독자들이 이러한 태도를 잘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책에서는 순수한 독립된 형태로 기술해놓았다는 점을 짚어놓았다.





   이 책의 요체는 책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2부라는 생각이 든다. 내재과거아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담고 있는 제1부와 자신에게 '새로운' 부모 역할을 하는 법을 제시하는 제3부도 물론 중요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내가 가장 시간을 들여 읽은 부분은 바로 제2부였다. 나는 제2부의 몇몇 장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는데, 어느 장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다(사생활은 소중하니까요). 부모님의 태도를 되돌아보면서, 나의 내재과거아를 확인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떤 날은 60페이지를 3시간에 걸쳐 곰곰이 씹으며 푹 빠져 읽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나니 나의 내재과거아의 다루기 힘든 감정과 욕구에 대해 이해해야 할 일부터 참 거대하게 느껴졌다. 내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내재과거아의 욕구에 제약을 긋고 한계를 설정하기 전에, 일단 '상호 존중'의 태도로 나의 내재과거아의 감정을 잘 보듬는 일부터가 급선무란 생각이 든다.


   실은 이 책을 잘 요약해주겠답시고 3문단에 걸쳐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과 키워드를 정리하고, 내재과거아에게 새로운 부모 역할을 할 때 어디를 지향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까지 책에서 추려내 잘 정리했었다. 이걸 보여준 지인으로부터 내가 정리한 내용만 읽어도 책을 다 읽어본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세 문단을 삭제해버렸다(그리고 위에 있는 내용들 역시 읽어나가며 대폭 삭제하거나 대략적인 내용으로 상당량 수정해버렸다). 내가 삭제한 세 문단은 이 책을 읽으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있으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심리학 개념을 담은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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