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랑스 책벌레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되었던 지난주를 -드디어- 보내고, 미리 점찍어뒀던 에세이집 한 권을 읽었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미리 보기로 훑어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읽어보기로 정해둔 책이다.


   저자 이주영은 20대엔 일본, 30대엔 이탈리아, 40대인 현재 로마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 '에두아르'와 결혼해 프랑스의 루브시엔이란 마을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뭐든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기 일쑤인 '오지랖 끝판왕+덜렁이+쌈닭+책벌레'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무척 재미있는 에세이다.


온갖 물건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물건을 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돈을 잃어버리는 재주. 심혈을 기울여 못을 삐뚤게 박고, 그 와중에 벽까지 손상시키는 재주. 하루가 멀다 하고 쌈박질을 벌여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고, 온 집안을 엉망진창 난장판으로 만드는 등등의 재주다. 아! 또 있다. 하자 있는 물건을 골라 사는 재주다. (중략) 이 많은 탁월한 재주가 어째 하나같이 이 모양인가?


본서 119쪽~120쪽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성격이 좀 괴팍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편에 대해 과격하게 말하는 표현이 자주 나와서 처음엔 좀 놀랐지만, 나 같아도 이런 남편과 산다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내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에두아르는 다음날 출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그냥 가방에 잘 넣어두면 될 것을 굳이 출근 전날 밤 현관 바닥에 하나씩 던져놓으며 지저분하게 출근 준비를 한다. 또한 책에 집중하고 있느라 장모님이 선물한 시계를 잃어버린다든가 최신 스마트폰을 산 지 2개월도 안 되어서 잃어버리는 등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심하게 비일비재하다. 어디 그뿐인가. 책벌레답게 여기저기서 모은(?) 책을 잘 버리지도 않는다. 곰팡내가 나고, 중복되는 책이 여러 권이라도 말이다! 책벌레 아니랄까 봐 책에 쓰는 돈이 어마어마해서 저자가 가정경제 파탄을 늘 걱정해야 될 정도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속이 타는데, 에두아르는 대쪽같은 선비 기질의 타고난 오지라퍼인지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참견하느라 동네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오죽하면 저자가 '책벌레 쌈닭'이란 별명을 붙여줬을까.

   위와 같은 여러 기행을 자주 일삼곤 하는데, 어찌 깨가 쏟아지는 결혼생활을 지낼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런 남편과 지내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한국어로 욕을 하곤 한다. (나라도 그러겠다...) 저자 말마따나 에두아르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책 속에는 에두아르가 '미친 책벌레'가 된 계기로 추정되는 이야기들, 애서가인 그의 독서법, 그가 책을 잘 버리지 않는 이유 등이 나와 있다. 에두아르의 과거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지만, 그가 단기 기억력과 응용력이 부족한 이유는 찾을 수가 없어서 그 점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에두아르가 덜렁이가 된 계기도 궁금한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에두아르의 기행보다는 에두아르의 착한 성품과 미덕, 그런 그를 바라보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마음에 더 크게 남는다. 과격한 표현으로 남편을 한없이 까고 있는 것 같은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들은 꼭 '에두아르'라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남편이 일반적인 아내에게 일상적으로 듣는다는 잔소리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에두아르는 그 정도가 심한 축에 들긴 하지만... 쿨럭)


   한편 크고 잦은 파티가 잦은 대가족 시댁에는 '낭독과 연설'이 일상이며, 식사 초대엔 반드시 책과 같은 관심사로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야 하는 등 프랑스인들 일상적인 대화 속에는 정치인 외에도 수많은 작가의 이름과 문학작품의 제목이 오간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적인 담론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분위기인 프랑스의 문화는 우리 문화와 사뭇 대비되어 좀 씁쓸하다. 우리도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들은 으레 정치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게 다이다. 얼마 전 읽은 문학서적이라든가 시(詩)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설사 내가 엊그제 읽은 책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끌어내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은 소수에 속할 정도로 한국의 책 읽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이러니 현재까지도 파리에 일본 서점은 있어도 한국 서점은 없는 게 아닐까. 안타깝다.





   글 초반에 이 책을 두고 덜렁이 책벌레 남편에 관한 이야기라고 내가 설명했던가? 흐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음과 동시에 -저자가 에필로그에서도 밝히고 있듯- 독서와 인문학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에세이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집에 쌓아둔 채 읽지 않은 책들을 날 잡아 진득하게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책 끄트머리에 에두아르가 쓴 '나의 인생책'에 관한 글이 있는데 글솜씨가 저자 못지않게 탁월해서 형광펜으로 긋고 싶을 정도였다. (에두아르는 질색을 하며 싫어하겠지만! 푸하하하~) 그가 쓴 글 중 인상적인 문장을 몇 개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우리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무실을 오가는 당일치기 여행을 하며 책상 앞에 앉아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의 희생자는 아닐까요?


본서 311쪽

한없이 펼쳐지는 시의 파도 속에서 저는 제 안의 어둡고 비겁하게 오염된 영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그의 언어는 저의 이마를 상쾌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본서 312쪽~313쪽

책이란 우리네 인생과 함께하는 좋은 벗인 것 같습니다. 때론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때론 따끔하게 충고하며, 어떤 때는 생각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아 당황하게 만듭니다. 책이란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그런 조금은 골치 아프지만 사랑스러운 친구입니다.


본서 3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