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인류 명저 70권
히비노 아츠시 지음, 민윤주.김유 옮김, 아토다 다카시 감수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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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이 단어만 들어도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들어와서 제목은 익숙하지만 책을 펼치면 왠지 고리타분할 것 같아 읽을 시도조차 하기 싫은 그런 기분. 고전을 앞에 두면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거, 설마 나만 그럴 리는... 없겠지? 고전 좋은 거 누가 모르나. 근데 좋은 것도 '미리 보기' 같은 수단으로 훑어볼 수 있어야 제대로 도전해 볼 마음이 생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옷도 카탈로그나 잡지,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미리 엿보지 못한다면 그 좋은 옷이 존재하는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존재하든 말든 알게 뭐란 말인가. 애초에 좋을지부터 모르는데.


   <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인류 명저 70권>은 고전 좋은 줄은 알면서도 도전해보기가 결코 만만치 않아 잘 읽어보지 않았던 나에게 '고전 미리 보기'용으로 괜찮은 책이었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고전을 읽어볼 생각은 잘 안 하는 사람, 오래된 명저보다 왠지 신간에 눈이 자꾸만 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무척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소개를 보니 독서의 달인이자 요약의 신이라고 하는데, 이왕이면 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고전 카탈로그가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과거에 읽다 말았던 명저부터 골라서 먼저 읽으려다가 그냥 처음부터 읽어나갔다. 책의 포문을 열어준 헤로도토스의 <역사>, 알고 보니 일본식 제목으로 부르고 있었던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철학자들을 사사건건 조롱하며 쓴 소설인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차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교의 독일식 발음이란 걸 알게 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매트릭스] 속 '오라클'의 모델이었던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등. 눈 앞에 펼쳐진 70여 권의 명저는 처음엔 그야말로 방대하게 느껴져 막막했으나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각 고전마다 4페이지 내외로 짧게 요약되어 있어서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술술 잘 넘어가서 속도감 있게 읽기 쉬운 책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많은 명저를 핵심만 훑고 갈 수 있게 정리해놓은 저자의 내공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플라톤의 <향연> 속 아리스토파네스의 세 가지 성에 관한 이야기를 두고 저자는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남성, 여성, 자웅동성 이렇게 세 가지 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손과 발을 네 개씩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제우스가 각각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원래 '남성'이었던 인간은 자신과 같은 남성에게 끌리게 되고, 원래 '여성'이었던 인간은 자기와 같은 여성에게 끌리게 되는 것이며, 원래 '자웅동성'이었던 인간은 이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캬, 이 오래된 아저씨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원래부터 존재했고 그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이렇게나 기발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까마득한 옛날에 지어진 책의 내용을 보며 '거참 신박한데?'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이뿐만 아니라 찰스 로버트 다윈의 <종의 기원>을 두고 많은 사람이 "인류는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든가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힌다"는 내용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데 나 역시도 그 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왜냐하면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종차별을 과학적으로 긍정하는 사상에 악용되는 걸 두고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 내용을 차별적 사상과 연결 짓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다윈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화는 진보와는 다르며, 진화는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본서 194쪽 -





   요약의 신이 요약한 책답게 내용이 일목요연하면서도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아무리 고전의 핵심을 실어놓은들 문체가 별로면 잘 읽히지 않을 텐데,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핵심을 예쁘게 추려와 잘 떠먹을 수 있게 앞에 차려놓았다. 그런데 몇몇 명저의 요약정리가 양이 좀 적어서 아쉬웠다. 짧게 요약을 끝낸 명저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내용이 추가되었더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인류 명저 70권>을 읽은 후 도전해보고픈 책들이 생겼는데,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 파스칼의 <팡세>,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그것이다. 이 책으로 엿보았을 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여유가 되면 얼른 읽어보고프다.


   고전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고전을 읽으면 삶에서 고난이나 문제를 마주칠 때마다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권하곤 하는데, 그게 정말 그러할지는 고전을 읽은 후 고난을 맞닥뜨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의외로 고전을 읽은 게 아무 소용 없을지도 모르잖나. 그럼 도대체 내가 고전을 도전해보기로 마음먹고 이 책을 읽어본 이유가 뭐냐고? 그건 바로 순수한 '앎'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고전'이니까. 고전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인정받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도 좋고 문장도 좋다. 이 책의 저자 말마따나 고전이 재미없다면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계속 읽혀 왔을 리가 없었을 터. 고전이 어렵다고 생각해 나처럼 망설여 왔던 분들은 이 책을 카탈로그 삼아 명저들을 미리 엿보며 고전과 조금씩 먼저 친해져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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