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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이별하는 법 - 아이스너 상 수상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리코 타마키 지음, 로즈메리 발레로-오코넬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프레디 라일리'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살고 있는 17살 소녀예요. 프레디는 낡은 인형들을 재활용해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고, 딸기 향은 좋아하지만 딸기 맛은 싫어한답니다. 그리고 '키스를 잘하는 것 같다'고 자신을 꾸밈없이 말하기도 하죠. 이 당찬 소녀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요. 사랑·연애 칼럼니스트인 '애너 바이스' 선생님께 상담 메일을 보낼 정도로 끙끙 앓고 있는 고민이에요. 그건 바로 작년부터 좋아하고 있는 자신의 여자친구 '로라 딘'과 자꾸만 헤어지는 것...!
로라 딘은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매력적인 여자애예요. 로라와 프레디는 체육 시간에 스퀘어 댄스를 함께 춘 것이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되었죠. 프레디는 로라가 자신을 좋아해 줘서 무척 기뻤어요. 체육 시간에 로라가 자신을 만진 그 순간, 온몸에서 로라의 손길이 다 느껴지고 심장마비가 올 것만 같았을 정도였으니까요.

늘 로라만 생각하는 프레디에게 얄궂게도 로라는 툭 하면 상처를 줘요. 로라는 바람둥이 기질이 상당해 보일 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여자애로 보여요. 학교에서 인기가 너무 많으니 뭐 어련하겠어요? 지금까지 이 커플은 세 번이나 헤어졌었는데, 전부 로라 탓이었어요. 한 번은 독립기념일에 웃기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프레디에게 이별을 고했고요. 또 한 번은 '요즘 나는 남자들과 데이트 하고픈 마음이 자꾸 든다'라며 프레디에게 상처를 주었죠. 그리고 이번 세 번째엔 다른 여자애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프레디에게 들키고야 말았죠. 그것도 밸런타인데이에!
프레디의 절친 '두들'은 나쁜 로라에게 계속해서 상처받는 프레디를 보다 못해 예언자라고 불리는 점성술사에게 프레디를 데려가는데요. 점성술사는 프레디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줍니다. 당신은 짝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닌 파트너가 계속 바뀌는 춤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고,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춤판을 떠나라고요.
솔직히 그 애에 대해 생각도 말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하게 돼요.
뭘 해도 다시 그 애에게로 돌아가요.
- 본서 49쪽~50쪽 -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프레디에게 다가와서 화해의 시도를 하는 로라에게, 바보같이 프레디는 또 넘어가고 마는군요. 프레디의 친한 친구들인 두들과 '에릭', '버디'는 그런 프레디를 안쓰럽게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하진 못해요. 왜냐하면 모든 건 프레디의 의지이고 그녀의 개인 연애사이니까요. 더구나 로라 딘은 프레디의 친구들과는 친해질 생각도 안 하고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인데요. 친구들은 그런 로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지만, 프레디에겐 달리 뭐라 말하지 못하죠.
매력적이긴 하지만 성실한 연인으론 빵점인 로라 때문에 늘 애간장이 끓는 프레디. 로라 딘의 바람기 때문에 계속 상처를 받고 또 받다가 결국은 그냥 로라의 나쁜 면보다는 좋은 면을 더 바라보기로 합니다. '자유연애'라는 새로운 혁명을 이끌겠다며(세상에...). 그런 로라와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프레디는 절친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네요. 두들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프레디는 로라에게 흠뻑 빠져 지내느라 두들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동성 커플인 에릭과 버디도 프레디와 소원해지는 것 같고... 프레디는 새로 알게 된 '바이올렛'이란 친구에게 자신의 힘든 연애 고충을 살짝 털어놔 보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자신의 힘듦이 사라지진 않아요. 프레디는 점점 소원해져 가는 절친들과 화해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리고 '로라 딘'이라는 이 나쁜 연애에서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제 다 읽은 상큼한 그래픽노블 <이별과 이별하는 법 Laura Dean keeps breaking up with me> 속의 주인공 프레디를 보며 과거의 저를 자주 떠올렸어요. 저 역시 나쁜 인간에게 바보같이 질질 끌려다니며 많은 시간을 잃어버린 미련한 연애사를 지녔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책 후반부에 나온 이 말들이 더 가슴 깊이 와닿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건
공통점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랑은 힘든 거예요.
헤어짐도 힘들고요.
사랑은 극적이고,
헤어짐 역시 극적이랍니다.
(중략)
일대일 관계든 일대다 관계든
당신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사랑을 해야 해요.
주는 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은 맞지만
흔히들 갖는 생각과는 반대로,
사랑은 당신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서는 안 돼요, 프레디.
- 본서 263쪽, 267쪽 -
위 문장들은 더 참고 더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연애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말들이었어요. 바보 같은 연애사 덕분에 이젠 누군가를 만날 때 무조건적인 희생은 안 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 바뀌진 않더군요. <이별과 이별하는 법>은 이런 바보 같은 저에게 무척 필요한 책이었어요. 이젠 좀 정신 차리라고 말해줄 친구처럼 말이에요.
이 책은 무채색과 핑크색으로만 표현되고 있는데 그게 무척 감각적이에요. 책 곳곳에 여리여리한 봉선화 꽃물처럼 자리 잡은 핑크색이 얼마나 달콤하게 다가오는지 몰라요. 거기다 완성도 높은 그림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책을 다 읽고 그림 작가의 이름을 한번 검색해볼 정도였어요. 프레디의 내면이 세심하게 표현된 내용과 예쁜 그림이 너무나 찰지게 잘 어우러져 있어서, 글과 그림 작가가 따로 있다고 생각이 안 들 정도였지 뭐예요.

제가 글 초반부터 요약해놓은 줄거리를 읽으며 눈치챘듯이 이 책의 주인공 프레디는 레즈비언이에요. 프레디의 절친 중 에릭과 버디는 남성 동성애자들이고요. 이 그래픽노블은 엄밀히 말하자면 퀴어 문학 쪽에 속하는데, 정확히는 '퀴어 영 어덜트 문학'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이러한 차별에 고뇌하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시선으로 초점을 맞춰 크게 언급할 생각은 없어요. 사랑은 이성애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동성애에 대해 딱히 거부감이 없거든요. 이 책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풋풋한 성장만화예요. 굳이 다른 프레임을 더 씌울 필요가 뭐 있겠어요?
<이별과 이별하는 법>은 파릇파릇한 풋사과를 깨문 듯, 빠알간 앵두를 입에 넣은 듯, 향긋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한 그래픽노블입니다. 그리고 열렬한 감정과 갈등 또한 잘 버무러져 있죠. 마침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군요. 책 뒷면의 추천사에 적혀 있듯 이 책은 '차별·동성애 혐오·독소적 관계라는 주제를 부드럽게 그러나 강렬하게 다루는 탁월한 그래픽노블'이라고 찬사 받을 만합니다. 색안경 없이 모든 이의 사랑을 바라보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