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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로 읽는 철학 이야기 - 이솝의 지혜, 철학자의 생각법! 일상에서 써먹는 철학 개념
박승억 지음, 박진희 그림 / 이케이북 / 2020년 1월
평점 :
이솝 우화라는 친근한 단어에 이끌려 올해의 첫 철학서적으로 가볍게 읽어볼 생각으로 골라본 <이솝 우화로 읽는 철학 이야기>. 가볍게 읽어나갈 수는 있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진 않은, 재밌는 철학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솝 우화를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그에 연관된 철학 이론들을 설명해놓았다. 첫 번째 주제는 '지성을 사용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 주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의 문제'에 관한 것이며, 끝으로 세 번째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주제이다. 각각의 주제마다 9개의 이솝 우화와 철학적 지식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솝 우화 '엄마와 늑대'를 바탕으로 베이컨의 우상론을 끌고 와 팩트 체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늑대와 그림자' 우화를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과 결부시켜 자기 직시가 왜 중요한지, 사물의 참모습을 보는 지성의 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욕심을 내다 개울물 속에 뼈다귀를 빠뜨려버린 '욕심 많은 개' 우화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이며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 진짜 행복이라고 말했는지 알아본 뒤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이런저런 질문에 빠뜨리게 만드는 저자의 철학적 사유에 탁월함을 느꼈다. 물론 이솝 우화 자체에 여러 함의가 담겨 있긴 하지만, 그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고 같은 이야기도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깊이가 달라진다. 이 책 첫 번째 주제의 6번째 우화인 '우유 짜는 소녀와 들통'을 예로 들어 보자.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소녀가 우유가 든 들통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면서, 이 우유로 버터를 만들어 시장에 판 뒤 그 돈으로 구입한 암탉으로 병아리를 가득 키워 닭이 되면 다 팔아 예쁜 드레스를 살 거라는 상상을 하며 우쭐대다가 들통을 땅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은 나는 '그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항상 현재에 먼저 집중해야지'라는 생각에 그쳤다. 그에 반해 저자는 소녀의 상상하는 행동을 보며 인간의 지적 작용 중 하나인 의미론적 능력과 이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덩달아 발전한 시뮬레이션 능력, 즉 상상력에 대해 언급하며 우화 속 소녀로부터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엿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이런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의 목적에 대해 고찰하며 이는 바로 기계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임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자, 저자와 나의 해석의 깊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잘 보았는가. 이 예시만 보아도 내가 왜 저자에게 탁월함을 느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했을 거라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은 전체가 꽤 유기적으로 잘 엮어져 있다. 가령 첫 번째 '지성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주제의 4번째 이솝 우화('방앗간 주인과 아들, 그리고 당나귀')에서 주체성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언급된 독일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세 번째 주제 속 7번째 우화인 '아이들과 개구리' 편에서 '악의 평범성'을 설명하며 다시 언급되는데, 덕분에 한 번 더 이 잔인한 역사를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볼 수 있었다. 또한 방금 말한 '아이들과 개구리'편의 철학 수업에서 짧게 언급되는 스토아 학파와 쾌락주의는 앞서 '욕심 많은 개' 우화의 철학 수업에서 나왔던 이론이다. '농부와 자식들'(142쪽) 편에서 나왔던 파놉티콘(Panopticon)이란 개념이 '시골 쥐와 도시 쥐'(243쪽)에서 또 나오듯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전체가 잘 연결되어 있는데, 이야기들을 잘 구성해놓은 저자의 능력이 참 감탄스러울 뿐이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듯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덩어리'이긴 하지만, 이를 잘 섞고 엮어내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것일 테니까.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가족이 함께 읽는 책이기를 바란다고 적어놓았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기엔 문체나 내용이 다소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들은 아이들용처럼 느껴진다는 게 좀 아이러니다. 이 책은 아무리 봐도 중2 이상의 연령대가 읽어야 할 책으로 보이는데, 그에 맞게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조금만 더 세련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이솝 우화로 읽은 철학 이야기>는 이솝 우화를 저자가 가진 철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해석하며 그 안에 역사, 그리스 신화, 영화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 또한 잘 버무려 놓은 괜찮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서적이 읽고 싶거나, 혹은 당장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철학 지식을 얻고픈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