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앤 스타일
데이비드 코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벤치워머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남자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건 언제나 즐겁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그런 이유로 월간 패션잡지의 인물 인터뷰 섹션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멋있는 남성 인터뷰이의 인터뷰가 있는 달엔 더더욱.

   연말&연초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나를 찾아오는 컨디션 난조를 타파하기 위해 읽었던 데이비드 코긴스의 <맨 앤 스타일>을 다 읽은 후, 나는 '이 책의 장르를 대체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라고 오래 고심을 했었다(나야 뭐 기분 전환하기 위해 취향이 괜찮은 멋있는 남자들이 보고파서 읽었기에, 장르는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글 초입에서 언급했던, 잡지책의 인터뷰 섹션만을 모아놓은 책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인터뷰어의 견해와 인터뷰이들의 대답이 잘 조화가 된 책 말이다. 그런 잡지 스타일의 책이라서 그런가, 읽다가 던져 놓고 한참 뒤에 봐도 앞서 읽었던 내용과의 연결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읽기가 참 편했다.





   요즘 길거리의 남자들 패션을 보면 패셔니스타들을 흉내 낸 남자들은 많아도 댄디한 남자들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만 신경 쓰지, 정말로 본인의 취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남자는 과연 있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 남자의 옷장은 그의 아파트나 서재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취향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편집자인 글렌 오브라이언도 이 책의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댄디는 소위 '패셔니스타'라는 끔찍한 이들과 다르다. (중략)

진정한 댄디는 자기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그리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패셔니스타들을 망신주기 위해), 최신 유행에 대한 클래식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 본서 5쪽 -


   물론 패션이나 취향은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이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인 데이비드 코긴스는 진정한 의미의 댄디한 남자이다. 글렌 오브라이언이 인정했을 정도로 말이다. 멋과 취향을 아는 저자는 자기가 아는 멋있는 남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취향에 대해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듯 우아하게 인터뷰했다. 그런 후 세상에는 자기처럼 멋있는 남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우리에게 소개했다. 파파라치나 신경 쓰며 옷을 입는 패셔니스타들의 비속함에 대해 일침을 날리듯 말이다.





   취향이란 건 소소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 잘 아는 저자는 소소한 질문으로 인터뷰이들의 취향에 대해 우리가 파고들게끔 한다. 가령 '패션 철학이 있나요?(2장)', '아버지의 스타일에는 원칙이 있었나요?/당신의 스타일에도 원칙이 있나요?(1장)', '어렸을 때는 무슨 옷을 입었어요?(1장)/졸업파티에는 뭘 입고 갔나요?(3장)'와 같은 패션 스타일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태어나 처음으로 멋지다고 생각한 남자는 누군지/특별히 수집하는 건 있는지/첫사랑은 누구였고/첫 번째 향수는 무엇이었으며/갖고 있는 넥타이가 몇 개고/제일 잘하는 요리는 무엇이며/인생 스포츠가 있는지/당신이 살던 공간은 어땠는지 등, 저자는 이런 소소하지만 취향이 묻어나는 질문을 인터뷰이들에게 던지며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그들의 취향을 드러내 보이게 한다.

   나는 많은 질문 중 당신의 스타일에도 원칙이 있느냐는 질문과 당신에게도 패션 흑역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특히 인터뷰이들이 흑역사라고 들려준 이야기 중 대부분은 전혀 흑역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 당시 패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을 뿐(푸힛).





여유가 되는 한 최고로 질 좋은 물건을 살 것.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최대한 오래 입을 것.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다이어트다.

- G. 브루스 보이어, 97쪽 -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첫째, 데이비드 코긴스는 취향이 멋진 남자일 뿐만 아니라 글도 너무나 잘 쓴다는 것. 둘째, 여기 나온 남자들 중 제대로 이름을 들어본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한국계 미국인으로 보이는 아티스트 '바이런 김'조차). 인터뷰이 중 '존 브로디'는 배우 애덤 브로디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크리스 브라운'은 내가 아는 그 팝스타가 아니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80여 명의 멋진 취향을 가진 남성들을 알게 됐는데.

   짧은 단독 인터뷰로 그레고리 펙에 관한 글도 있는데, 그의 아들 앤서니 펙이 썼다. 취향이라는 건 이렇게 대대손손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우아함을 느낀다. 패셔니스타가 아니라 댄디한 남자가 되고픈 남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멋과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길 권한다. 고민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당신은 진정한 댄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