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수지 홉킨스 지음, 할리 베이트먼 그림,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나는 허망함과 상실감에 휩싸여 저기압인 상태로 지내곤 한다. 일 년이 어느새 다 흘러갔다는 허망함, 내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이런 우울감에 휩싸여 다음 해 1월까지 지내는 것이 나에겐 연례행사이고, 으레 그래온 것이라 이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딱히 찾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지금 이런 기분 속에 있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붙잡아보리라고.


   그 일환으로 읽어본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작가인 엄마가 쓰고, 일러스트레이터인 딸이 그림을 그린 책이다. '엄마가 죽은 후에 내가 하루하루 단계적으로 따를 수 있는 지침서를 하나 써 달라고' 요청한 딸의 부탁이 이 책의 시발점이었다. 우리 엄마가 해주시진 않을 것 같은 이런 삶에 대한 지침서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나를 상상하며 책을 붙잡고 있다 보니 슬퍼하다가 웃기도 하고, 여러 복잡 다양한 감정에 휩싸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죽음은, 디디고 서 있을 땅바닥이 사라진 듯한 기분을 아마도 꽤 오랜 기간 안겨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상실감을 겪고 있을 딸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며 딸이 삶을 계속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독려한다.


결국은 우리 모두 죽고 끝날 텐데 왜 굳이 힘들게 살아가야 하냐고? 거기엔 훌륭한 이유가 있어. 네가 영원히 산다고 가정해 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 버릴지 상상이나 가니? 다가오는 유효기간이 있기에 비로소 놀랍고 경이적인 일들이 생기는 거야.

- D+21일. 등산 가는 날 -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는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 줄 사람을 찾는 게 좋아. 왜냐고? 만약 네가 계속 잃기만 하고 채우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결국은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것 아니니.

- D+400일. 내 빈자리 채우기 -

뭔가를 보거나 하면서 문득 '엄마가 참 좋아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생길 거야. (중략)

아니면 기똥차게 좋은 일자리를 구했을 때, 또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을 때, 그럴 때 이제는 나한테 달려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지겠지.

하지만 아니야, 넌 여전히 내게 이야기할 수 있단다.

- D+850일. 내게 말을 걸어 줘 -





   저자인 엄마는 자신이 죽은 후 'D+1일'부터 시작해 D+7일, D+26일, D+231일, D+1,775일, D+5,500일, D+12,000일... 이렇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동안 딸이 직면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지침을 적어놓았다. 부고를 쓰고, 대청소를 하고,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들고, 생각이 많은 날 트램펄린을 뛰고, 스스로를 위해 멋들어진 신발을 사는 등. 딸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일들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잊을만하면 엄마표 레시피를 정리해 딸에게 전수한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후 슬픔에 잠겨있을 그 다음날에도,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날에도, 저자는 엄마표 레시피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힘을 내보라고 딸을 격려한다. 또한 저자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항상 유머를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데, 이는 마치 삶이 아무리 진지하고 따분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유머를 잊지 말라는 저자의 따듯한 당부처럼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좀 나아졌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해를 마무리하며, 저자의 지침대로 버킷 리스트가 아닌 '덕킷 리스트'를 만들어 죽는 날까지 피하려고 노력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저자가 알려준 레시피 그대로 카레를 만들어 봐야지. 맛있는 카레를 먹으며 이 마음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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