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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만화를 위한 배색 교실 ㅣ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 56
마츠오카 신지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볼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황홀해진다.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색감, 개성 강한 그림체, 거기다 빼어난 구도까지 갖추고 있는 일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짧은 탄성이 나온다. 특히 그림체에 잘 부합하고 있는 매력적인 색감을 가진 일러스트는 작품을 본 지 한참이 지나도 머릿속에 계속 떠오를 정도로 그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런 이유로, 내가 얼마 전 읽어본 <일러스트·만화를 위한 배색 교실>의 저자 말마따나 그림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색(배색)일지도 모른다.
한참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그 그림의 색감, 그러니까 '배색'을 만들어내는 건 꽤 힘든 일이다.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다 색깔 하나를 잘못 칠하는 바람에 전체 그림이 촌스러워지거나 이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험은 다들 한 번씩은 해보았을거다. 배색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거다.

일러스트를 잘 그리진 않지만 일러스트를 보는 건 무척 좋아하고, "필기시험 과목별 평균이 89점인 실력이라면, 아직 실기시험은 안 쳤지만 컬러리스트는 다 따놓은 당상"이란 말까지 들었으나 여차저차해서 실기시험을 안 치고 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놓쳤던 이력이 있는 사람으로서(그 이후엔 흥미가 떨어져서 컬러리스트 필기시험을 다시 치를 생각도 안 했지만), 이렇게 학문적 혹은 기술적으로 접근한 일러스트 배색 책을 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크게 챕터 1과 챕터 2로 나뉜다. 챕터 1에서는 색을 잘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배색의 기초 지식'이 정리되어 있다. '색의 원리'부터 시작해 '색의 삼원색', '색의 3속성', '톤' 등등 말이다. 어쩌다 쳐 본 컬러리스트 산업기사 필기시험을 고득점으로 합격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이 챕터가 그다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챕터 2에서는 드디어 본 게임이 펼쳐진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배색 이론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예제 일러스트들로 직접 살펴볼 수 있다!(잇힝~) 톤 온 톤 배색, 레피티션 배색 등의 '베이직 배색'을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기법이자 '유니크 배색'에 속하는 리피트 배색, 그 외 '색상별 배색', '계절·시간대별 배색', '키워드별 배색', 이렇게 총 5가지 파트가 이 챕터 2의 주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보며 가장 감탄한 순간은 바로 '계절·시간대별 배색'에 속하는 배색 기법 중 하나이자 내 감각이 여러 가지 공감각으로 가득해지는 시간대이기도 한, '해 질 무렵 배색'이었다.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 순간, 석양의 색은 선명함이 정점에 이릅니다.
사람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진한 오렌지색과 노란색을 등진 캐릭터에게
시선이 주목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중략)
하늘 윗부분에 남은 미세한 청자색의 배색도 훌륭해
이 색의 유무로 느껴지는 감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본서 126쪽 -
위의 인용글만 봐도 알겠지만, '석양'하면 떠오르는 지배적인 색감은 오렌지색이다. 하지만 보색인 청자색을 미세하게 넣음으로써 이 해 질 녘 일러스트의 '드라마틱한 오렌지색의 세계'는 그 느낌이 더욱 풍부해진다. 얼마나 멋진지는 저 인용글이 설명하고 있는 그림을 직접 보게 된다면 아마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론 백날 읽어봐야 한 번 실전을 겪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열심히 탐독했다고 해서 컬러링을 할 때 바로 멋진 배색이 나올 리는 없을 거다. 그치만 여행을 가기 앞서 그 여행지에 얽힌 역사를 알고 여행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내가 앞으로 컬러링을 할 때나 멋진 일러스트를 볼 때 이 책에서 습득한 이론들을 통해 색을 대하는 눈은 훨씬 확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확장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뭐 그 또한 크게 나쁠 것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가득 찬 책을 펼쳐보며 황홀함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