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느끼다 그리다 - 건축가 임진우의 감성에세이
임진우 지음 / 맥스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건축가 임진우의 <걷다 느끼다 그리다>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교육채널에도 나온다는 이 건축가를 한 번도 본 적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책 속의 그림과, 이 책을 읽으면 왠지 힐링이 될 것만 같은 출판사의 소개- 단지 이 둘뿐이었다. '건축가가 어쩌다 감성 에세이라고 글을 엮어 책을 냈을까?'라는 점도 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글쓴이가 건설 관련 신문에 2년간 매주 연재했던 칼럼을 묶은 것이었다. 프롤로그에서 글쓴이가 밝히길, 일주일마다 마감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써내야 하는 부담감이 컸지만 사물을 보고 느끼는 연습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훈련들이 스스로를 한층 성장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글쓴이 본인이 '글로 표현하는 훈련들'이라고 직접 말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지만, 확실히 읽는 이를 확 끌어당기는 글솜씨로 보기에는 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그림들... 세밀하고 꼼꼼하게 특징을 잘 잡아 그려낸 그 멋진 건물 그림들이란! 내가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던 이유 중 하나를 상기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글쓴이의 펜 수채화는 가히 수준급이다. 괜히 개인전 네 번에 그룹전까지 했을까. 푸른 녹음이 가득한 한양도성길, 나도 자주 가봤던 창신동 골목길, 인왕산이 자리 잡은 서촌 골목길,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촉석루 등 국내의 여러 길과 건물들을 그린 그림을 '첫 번째 스케치, 길을 걷다'라는 이름으로 묶어놓았다. 이 첫 번째 챕터에서 가장 멋졌던 그림은 '서촌 골목길'이었다. 통인시장을 비롯해 거대한 인왕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서촌을 멋들어지게 담아낸 글쓴이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아직 제대로 누벼본 적 없는 이 서촌을 꼭 제대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챕터 '여행을 느끼다'에는 글쓴이가 해외출장이나 여행지를 다니며 스케치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국가별 스케치 양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 순으로 많은데, 정작 인상 깊었던 스케치는 우즈베키스탄의 유적지 이찬 칼라였다. 그림 속에서도 이찬 칼라의 독특한 건축 양식은 빛을 발하고 있는데, 호라즘 제국의 전통 건축기법과 이슬람식 건축이 융합되어서 그렇다고 글쓴이 역시 적어놓았다. 독특한 건축물들이 가진 그 선과, 황토색 벽돌의 성곽 중간중간 -이브 생로랑이 사랑했던 마조렐 정원만큼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매력적인- 푸른 빛깔의 탑들이 자리 잡고 있어 시선을 무척 끈다. 실제 사진으로 이미 접해본 적 있는 이찬 칼라를 글쓴이의 섬세한 그림으로 다시 만나보니 느낌이 좀 더 이색적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글쓴이의 건축에 관한 견해를 세 번째 챕터를 비롯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아래는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건강한 건축은 친환경적이고 안전하고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건축 재료가 건강하기에 독성물질이 안 나오고,

햇볕이 적당히 들고 바람이 잘 통하고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은 건축이다.

사람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건축인 것이다.


본서 192쪽


   사실 위 구절보다 좀 더 감성이 짙게 묻어난 글쓴이의 건축 견해도 많으나, 나는 저 글귀가 뇌리에 박혔다. 무척 기본적인 사실이지만, 정작 현실에선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단지 본인은 그 건물에서 살 일이 없다고 값싸고 몸에 안 좋은 자재들로 원룸, 투룸,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 세태에 적잖이 탄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에 대해서 이렇게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글쓴이 같은 건축가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건축가들이 건축에 대해 싸구려 생각을 갖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건축가들이 쓴 칼럼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읽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