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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미래 연구소 - 전 세계 ‘너드’들이 열광한 과학 블로거의 대담한 미래 예측
잭 와이너스미스 & 켈리 와이너스미스 지음, 곽영직 옮김 / 시공사 / 2018년 8월
평점 :
미래를 예측해본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를 그려보는 일은 대체적으로 현재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낙관적으로 그려보게 되곤 한다.
미래의 내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을 예측해보는 것 역시 어렸을 때부터 빈번히 해왔던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강요에 의해 했었던 미래 세상 예측하기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내가 20년 후로 예측한 미래의 기술 중 두어 개가 떠오르는데, '3시간 후 녹아 사라지는 일회용 우산(줄여서 '3시간 우산')'과 '수중 도시'였다. 그 후 여태까지 내가 살아오며 지켜온 바에 따르면 '3시간 우산'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아 일반 일회용 우산으로 인한 쓰레기가 환경오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인류는 수중 도시와 같은 쓸데 없는 일에 돈을 쓸 확률이 거의 없고, 앞으로도 지상에 큰 재앙이 생기거나 돈이 남아돌지 않는 이상은 수중 도시 따위에 세금을 쓸 일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대신 현재 인류는 우주 식민지 건설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읽은 <이상한 미래 연구소>는 '수중 도시'와 같은 쓸 데 없는 상상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 예측 과학서이다. 책의 저자가 두 명인데, 이들은 부부다. 책 속에 적혀 있는 사실을 토대로 이 부부를 소개해보자면, 아내인 켈리 와이너스미스는 생명공학부 교수인데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충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헐, 정말 흥미진진한 연구이다!). 또한 자연과학 분야 톱 20위 안에 드는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이기도 하단다. 남편 잭 와이너스미스는 '토요일 아침에는 시리얼로 아침식사를(Saturday Morning Breakfast Cereal, 줄여서 SMBC)'라는 웹 코믹 블로그를 운영하며 과학부터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재밌는 농담으로 버무려 만화를 그리는 만화 작가이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들을 읽어온 분이라면 저자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소개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걸 알 거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분이라면 이 두 명의 저자는 이렇게 상세한 소개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걸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기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기피해버릴만한 내용으로 가득한 이 미래 예측 과학서는, 담고 있는 주제의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위트 넘치고 재미있는 농담으로 가득한 책이다. 한마디로 -이따금 어려우면서도- 무척 재미있는 과학서라는 거다.

저자들은 여러 전문 과학 서적과 논문을 탐독하며 지금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분야 10가지를 골랐다. '저렴한 우주여행', '소행성 광산', '핵융합 발전',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 '로봇 건축', '증강 현실', '합성 생명체', '정밀의학', '바이오 프린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이렇게 열 가지로 말이다. 이 분야들 중 대다수는 뉴스나 미국 드라마, 혹은 다른 과학서로부터 접해 와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주제들이었고, 그래서 이해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소행성 광산'이나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 '로봇 건축'은 내 상상 속에서나 접했지 현실에서 이런 분야에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에서 주인공이 개발한 로봇으로 나왔던 '마이크로봇'이 현실에서도 연구되고 있었다니, 이게 정말 현실이냐고! 뭐, 지금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 분야의 기술 수준은 고작 자동으로 종이를 접는 게 다여서 아쉽긴 하지만, 이 분야가 활발히 연구 중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 가슴은 충분히 두근거린다. 히로('빅 히어로'의 주인공)의 마이크로봇이 가진 능력을 당장 현실로 도입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의 모듈 로봇 분야와 '로봇 건축'의 건축용 로봇 무리 분야는 엄청나게 발전하게 될 텐데(그럼 저자들은 자신들이 선별한 과학 기술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되고 있다고 기뻐할 텐데! 하하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관심이 생긴 분야는 바로 '로봇 건축'이다. 그렇다. 집, 집, 그놈의 집. 무주택자들에게 있어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된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더구나 나처럼 단독주택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가진 아파트 혐오는 이런 열망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허나 현재 집을 지으려면 땅값도 그렇지만 건축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건축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건축 비용보다 40%, 혹은 훨씬 더 저렴한 비용에다가 완성하기까지 24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로봇 건축 분야가 이대로 계속 발전이 되면 멀지 않은 미래에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건축은 내가 죽을 때까지 기계의 힘을 빌린 인간들의 전유물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이 책은 내 생각이 얼마나 꽉 막혀있었는지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현재 로봇 건축 분야에서 대두되고 있는 기술들을 이 책에선 크게 '로봇 건축 노동자'와 '거대한 3D 프린터', '로봇 무리' 이렇게 나누어 파고들고 있다. 이 세 가지 기술 중 가장 실용적인 수준으로 발전되어 있다고 느껴진 건 바로 '거대한 3D 프린터'다. 이미 현실의 여러 분야에서 쓸모 있게 활용되고 있는 3D 프린터는 저자 잭 와이너스미스의 '2027년 로봇들의 반란' 농담만큼이나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내가 제대로 카운팅 한 게 맞다면 '핵융합 발전'에서 처음 등장한 '2027년 로봇들의 반란' 개그 드립은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에서, '증강현실'에서, '정밀의학'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그중 베흐록 코시네비스 박사가 고안한 -거대한 3D 프린터와 로봇 팔을 이용해 집을 짓는- '컨투어 크래프팅'이란 기술과 스티븐 키팅 박사가 만든 '로봇 주택 건축 트럭'은 상당 수준 완성된 기술들이다. 우스운 건, 이들이 당장 상용화되기 어려운 이유가 기술의 한계가 아닌 법률의 한계 때문이란 거다. 미국 같은 경우 집을 지을 때 기초, 벽, 배관 등등 각 단계마다 사람을 보내 검사를 하는데, 하루 동안 집을 지을 수 있게 된다면 이 검사들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힘들게 된다. 획기적인 로봇 건축 방법에 맞게 건축 허가 측정 시스템 또한 적절하게 변화된다면 머지않아 로봇 건축으로 지은 집들이 매물로 많이 올라오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로봇 건축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주제는 위에서 이미 짧게 언급했던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과 열한 번째 챕터인 '결론'이다. '더 먼 미래에 등장할 기술들, 또는 잃어버린 장들의 공동묘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열한 번째 챕터는 저자들이 이 책을 구상하며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었던 주제들, 즉 공동묘지에 들어간 주제들을 잠시 꺼내와 햇볕을 쬐도록 기회를 준 장이다. 안타깝지만 구글 드라이브 폴더라는 무덤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주제들은 총 4가지로, '우주 태양광 발전소', '첨단 보장구', '상온 전도체', '양자 컴퓨터'가 그것이다. 각각의 기술들이 매력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책의 메인 챕터로 넣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글을 끝맺고 나면 해당 기술이 적힌 묘비 그림이 위트 있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게 무척 재미있어 실소를 자아낸다(나 진짜 너드인가 봐... 이 그림들이 그렇게나 웃기다니!).
영 달라 보이는 분야라도 의외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과학 기술 분야가 많듯이, 이 책의 내용들 또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들이 많다. 이는 과학 분야라는 특수성과 더불어 저자들의 유머와 말솜씨로부터 기인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핵융합을 '사교성 없는 덕후 커플의 데이트'에 비유할 줄 아는 저자의 내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프로그램 가능한 물질' 편에서 스파게티 글자 농담(138쪽)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뒤에 재언급(149쪽) 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식의 위트 있는 전개가 책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내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면 직접 읽어보며 같이 웃어보시길). 저자들의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문체가 딱 내 스타일이어서 너무 재미있다.
예전에 읽은 <위험한 과학책>과 이 <이상한 미래 연구소>를 비교해 본다면, 둘 다 재미있긴 한데 이 책은 <위험한 과학책>에 비하면 이미지가 풍부하지 않다는 게 좀 단점이다. 가령 로봇 건축에서 3D 프린터를 사용해서 만든 음식물의 설명을 예로 들어 보자. 젤리 안에 3차원 그림을 그려 넣는 방법을 설명하며 '정육면체나 나선 등의 귀여운 도형이었다'라는 텍스트에서 끝내지 말고 이미지를 곁들였다면 책의 볼륨이 얼마나 더 풍부해졌을까? 209쪽에서 "그의 웹 페이지를 방문해보면 3D 프린터로 만든 재치 있는 초콜릿뿐만 아니라 옥수수빵으로 만든 문어까지 볼 수 있다."라고 -또!- 텍스트만 나열할 게 아니라 그 문어 사진을 직접 삽입했으면 책에 대한 흥미도가 더욱 상승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 때문에 실제 사진을 삽입하기가 어려웠다면, <위험한 과학책>처럼 일러스트로 친절하게 곁들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안 그래도 어렵고 지루한 과학 서적을 이미지를 적게 넣어 완성하다니,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가 있다니! 역시 두 저자의 유머와 말발의 승리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인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연구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고 있을 광경이 머릿속에 문득 그려졌다. 미래에 실제로 상용화될지 안 될지 그 여부도 불투명한 많은 과학 기술 분야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헤쳐나가며 진보하고 있다. 저자들이 말했듯 단지 지금 당장 핵융합 발전을 할 수 없고, 주말에 금성으로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이런 새로운 기술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우리로부터 절대 멀어질 수 없는, 아주 현실적인 분야다. 32기가바이트 저장소가 지금처럼 휴대하기 편하게 된 지 불과 얼마 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놀랍고도 새로운 기술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데 매일 SNS에나 시간을 낭비하며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텐가? 그런 인간들이 득실한 지구라면 저자 잭 와이너스미스의 우려대로 '2027년 로봇들의 반란'에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어쩌면- 실현될 가능성이 많은 과학 기술들이 가득한 이 책을, 과학 기술에 무관심한 당신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