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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소녀 ㅣ Wow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도나 조 나폴리 글,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8월
평점 :
오래전 도서관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기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건 마치 모래사장을 거닐다 우연히 용연향을 발견한 것과도 같았어요. 그날도 저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탐험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귀중한 보물을 발견했답니다. 그 보물은 바로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 이 보물을 발견했던 그날은 종일 가슴이 두근거려 어쩔 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 후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을 찾아보며 그의 탁월한 그림 세계에 퐁당 빠져들어 지금까지 헤엄치고 있답니다.
데이비드 위즈너가 처음으로 만든 그래픽 노블이 나왔는데, 어떻게 제가 안 읽어볼 수 있을까요? 도나 조 나폴리가 쓰고 데이비드 위즈너가 그린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Fish Girl>는 몹시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인어 소녀>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는 파랗고 거친 바다로부터 시작합니다. 거친 바다에서 점점 파도가 잔잔해지고 드문드문 땅이 보이기 시작하는 연안으로 시점이 옮겨오다, 어느 한 해변에 다다르는데요. 그곳엔 인어 소녀가 살고 있는 '오션 원더스'라는 아쿠아리움이 있었답니다. 높이가 3층인 이 아쿠아리움에는 모래와 자갈, 산호초, 조개, 그리고 예쁜 침대와 원피스 등 바닷속 풍경과 인간의 물건이 한데 뒤섞여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광경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그 안에는 깊은 바닷속에 사는 진귀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 물고기들 사이에, 스스로를 바다의 왕 '넵튠'이라고 소개하며 웅변하고 있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인어 소녀가 보이네요. 인어 소녀는 본인을 넵튠이라고 소개하는 그 남자를 넵튠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소녀는 아저씨가 시킨 대로 오션 원더스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일 듯 말 듯 신비롭게 드러내는 일을 매일 수행하는데요. 인어 소녀는 어쩌다 이런 숨바꼭질을 하며 아쿠아리움에 살게 된 걸까요? 그리고 대체 어디로부터 왔을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넵튠 아저씨의 공연이 끝난 후 평소처럼 사람들이 다 떠났을 거라 생각하고 오션 원더스 꼭대기 층의 물 위로 떠오른 인어 소녀는 '리비아'라는 낯선 소녀와 마주칩니다. 이런, 아저씨가 항상 인어 소녀에게 사람들의 눈에 전신을 보여주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넵튠 아저씨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인어 소녀를 보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테고, 그러면 과학자들이 실험실로 데려가버릴 거라며 말이죠! 인어 소녀는 너무 놀라 후다닥 숨어버렸어요. 인어 소녀는 두근대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낯선 그 소녀에게 들켰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 리비아가 다시 왔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인어 소녀는 수다떨기 좋아하는 십 대 소녀처럼 오션 원더스에 살고 있는 문어를 비롯한 여러 물고기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의 수족관을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인어 소녀는 자유롭게 수족관을 돌아다닐 수 있는 한밤의 이 시간과, 하루 일과를 끝낸 넵튠 아저씨가 기분이 좋을 때 들려주는 인어에 관한 신화를 들을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답니다(사실 인어 소녀는 그 이야기가 전설인 줄도 모르고 실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 줄 착각하고 있었어요).

다음날 오션 원더스를 다시 찾아온 리비아와 인어 소녀는 수족관 3층에서 드디어 제대로 인사하게 되는데요. 리비아는 인어 소녀가 진짜로 존재할 줄 알았다며, 인어 소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하지만 인어 소녀는 발성을 해 본 적이 없기에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물고기랑 말이 통하는지, 물 밖으로 완전히 나와 본 적은 있는지, 인어가 나오는 동화책의 내용처럼 꼬리 안에 다리가 있는지,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리비아는 인어 소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군요. 리비아는 자신은 12살이라고 소개하며 생일 선물로 받은 작은 종을 인어 소녀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그 순간, 리비아와 인어 소녀가 있는 3층으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 발걸음의 주인공은 바로 넵튠 아저씨였어요!
인어 소녀는 후다닥 물속으로 들어가고, 리비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데요. 리비아는 아저씨의 공연 중 파도와 번개를 만드는 기계는 누가 작동시키냐고 물었고, 넵튠 아저씨는 영업 기밀이라고 대답합니다. 음향 효과는 리모컨으로 하는 거 아니냐고 재차 묻는 -호기심 많은- 리비아를 넵튠 아저씨는 결국 집으로 돌려보내는군요. 이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인어 소녀는 진짜 바다의 신이라고 생각했던 넵튠 아저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아무도 없는 밤에 수족관 밖으로 나와 아저씨의 진짜 정체를 찾음과 동시에 소녀의 꼬리에 물기가 마르면 다리로 변한다는 신비한 사실까지 깨닫게 됩니다.
갖은 노력 끝에 오션 원더스의 문을 열고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된 인어 소녀! 밖에서 본 오션 원더스는 인어 소녀에게 더 이상 정겨운 집이 아니라 감옥처럼 좁게 느껴집니다. 인어 소녀는 오션 원더스를 탈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녀는 자신의 진짜 집을 찾을 수 있을까요?

넵튠 아저씨의 말만 평생 믿어온 채 아쿠아리움에 갇혀 살아가던 인어 소녀가 현실을 깨달은 후 자신의 자아를 찾아 모험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인어 소녀>를 읽는 내내 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글과 그림이 마치 한 사람이 쓰고 그린 것처럼 너무나 긴밀하게 잘 어우러져 있었고, 특히 익히 알려진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 실력이 여기서도 무척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야기가 생각보다 짧아서 아쉽고, 다음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완성도 높은 그림체와 스토리텔링이 이 단점들을 다 보완하고도 남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달이 휘영청 떠 있는 거친 바다가 펼쳐져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요. 인어 소녀의 이 모험 이야기도 거친 바다가 가진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군요. 데이비드 위즈너가 참여한 그래픽 노블이라면 앞으로도 반드시 읽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만족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