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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 - ‘짜장면’ ‘막걸리’ ‘도깨비’ 등으로 새롭게 역사를 읽는 시간! ㅣ 단어로 읽는 5분 역사
김영훈 지음 / 글담출판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아니, 이런 국사책이 왜 이제야 나온 거냐고오오옷...!"
어젯밤 저녁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를 다 읽고 허벅지를 찌르며 내가 한 말이었다. 이렇게 술술 잘 익히고 쉽게 넘어가는 국사 관련 책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부족한 그날 수면량을 국사 수업 시간이면 다 채울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제야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것이 그저 슬프기만 했다. 한국사 수업이 대체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물으신다면,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도 나는 담임 선생님이 한창 수업 중인 단상 바로 아래 위치에 앉아서도 꾸벅꾸벅 잠을 잘만 잤을 정도였다(그래서 그 담임 선생님이 날 그다지 맘에 안 들어 했다는 것은 보너스-). 세계사 수업 시간에는 이 정도로 지루하지 않았는데, 같은 역사 수업 시간임에도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키워드로 만나는 국사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특정 키워드를 유물이나 기록보다는 어원을 통해 그 키워드와 관련된 한국사를 되짚어 보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고대부터 시작해서 고려, 조선 탄생 시점, 조선 시대, 근대화 시기까지 총 4개의 챕터로 분할되어 그 속에 여러 키워드가 수록되어 있다. 난 술술 너무 잘 읽혀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트레이트로 그냥 읽어나갔지만, 반드시 분류해놓은 챕터를 다 읽은 후 다음 챕터로 넘어갈 필요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 읽고 싶은 키워드만 쏙쏙 골라내어서 읽어도 상관없게 내용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키워드당 수록된 콘텐츠는 5분이면 다 읽고도 남는다. 그래서 제목에 '5분'이 들어가 있나 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씨가 먹히다'라는 말은 씨앗과 관련된 말일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길쌈 풍습의 씨줄과 날줄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자어 '호초 胡椒'에 그 어원이 있는 향신료 '후추'는 고려 때 유입이 되었다는 걸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알 수가 있는데, 귀하고 비싼 값에 거래되던 후추는 조선에 와서도 국내에서 재배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속상한 사실 덕에 대항해 시대 속 서구 열강의 침략을 피해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이었다. 또한 갈 때까지 가보자는 의미를 담은 '이판사판 理判事判'이란 단어는 불교의 승려들이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고려 때의 특권을 박탈 당하는 바람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판승'은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을 뜻하고 '사판승'은 사찰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스님이란 뜻이다.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사찰의 잡일을 전담해야 하는 스님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단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호떡'은 중국이 중앙아시아로부터 들여왔다고 하여 '오랑캐의 떡'이라는 의미로 붙인 걸 우리나라에 그대로 가져온 것에 그 어원이 있다. 놀랍게도 호떡의 초기 모습은 인도의 '난'처럼 화덕에 구운 밀가루 빵이었다고 하니, 지금의 꿀과 견과류가 가득한 모습과 비교하면 괴리감마저 느껴진다.

각 키워드마다 실린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콘텐츠가 조금만 더 자세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따금 각 키워드 아래 '1분 한국사'라는 짧은 설명글이 실려있다는 사실이 그 아쉬움을 그나마 보충해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키워드마다 그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걸 보면, 학습 동기를 자발적으로 유발한다는 것에 꽤 큰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는 건, 내가 그 키워드에 대해 재미를 느꼈다는 반증일 테니까 말이다.
한국사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해 괴로웠던 나와 같은 사람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국사책이다. 우리나라의 지루한 국사책이 이렇게 흥미롭게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국사 교과서를 '입문 편'과 '심화 편'으로 나누어 입문 편을 이렇게 키워드 형식으로 만들어 편찬한다면 대박을 치겠단 생각이 든다. 입문 편에서 키워드를 바탕으로 그에 관련된 사료를 통해 재밌고 간략하게 공부한 후, 연대순으로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싶다면 심화 편을 펼쳐보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국사 수업 = 수면 시간'이란 오명도 벗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