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이웃 편 ㅣ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케다 가요코 지음,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세계가 만일
1000명의
마을이라면......
[본문 21쪽]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의 이메일을 통해 널리 퍼졌던 '100명의 마을(혹은 '만약 세계가...')'이란 이야기는 1990년경 환경학자이자 인구문제 전문가인 '도넬라 메도스' 박사에 의해 쓰인 '마을의 현황 보고'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글 초반 인용구는 제가 며칠 전 읽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웃 편>에 나온 글귀인데요. 정확히는 그 유명한 이메일을 재구성한 이케다 가요코의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의 원본인 도넬라 메도스의 '마을의 현황 보고'의 첫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100명의 마을'이란 이메일이 한창 돌고 있을 때 이메일을 통해서 이 이야기를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쯤 이 이메일이 재구성되어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책으로 엮어져 나왔을 때는 읽어보았지요.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던 저의 좀 독특한 습관 하나 때문이었는데요. 그건 바로 평소 별거 아닌 작은 일상에서조차 전 지구적 관점에서 고찰해보길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어컨을 켜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그런 사소한 일상에서 말이죠. 그래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런 거시적 관점으로 시각을 넓혀주는 책이라며 무척 반갑게 읽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다 읽은 후 일주일간 자꾸만 아득히 멍해지는 머리를 애써 추스르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어요. 평소 아무리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 관점에서 지구를 바라보길 좋아했더라도, 세세한 숫자와 함께 알려주는 지구의 생각지도 못한 현 모습에 충격을 받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1000명 중 200명이
마을 소득의 4분의 3을 벌고 있습니다.
다른 200명의 수입은
마을의 소득 중에서 겨우 2%입니다.
70명밖에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중 몇 명은 혼자서 2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 31쪽]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웃 편>은 도넬라 메도스 박사의 '마을의 현황 보고'를 메인으로 실은 책입니다. 마을의 사람 수가 100명이 아닌 1000으로 설정되어 있는 데다, 처음 읽어 보았던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어보았는데요. 추억을 되짚는다는 느낌으로 책을 펼쳐든 저는, 꽤 우울한 채로 책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기 시작하며 했던 생각들과 책을 다 읽은 후 이틀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꽤 다른 편인데요. 생각이 상반되게 달라졌다는 게 아니라 더 복잡하고 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정치학자이자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의 영어 번역자인 '더글러스 루미즈'의 에세이 부분과 책 후반부를 읽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도넬라 메도스의 '마을의 현황 보고' 파트를 읽은 직후만 해도, 과거에 읽었던 글처럼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다시 보게 됨과 동시에 기본적인 의식주가 전혀 안 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애석함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세계 마을'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단계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난 후 책에 실린 이해인 수녀, 국제기관단체인 한비야, 서홍관 의사의 에세이를 연이어 읽으며 그분들의 좋은 생각들에 대해 곱씹어 보며 음미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더글러스 루미즈의 에세이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뒷이야기 챕터를 읽고 나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몹시 우울해진 채로 책을 덮었더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읽기 시작했을 땐 꽤나 많았던 하고 싶은 말들을 지금 와서 하려니 흡사 '아무것도 모르겠다'와 같은 침묵만 되려 불러오네요.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세계 경제, 그렇기에 이대로는 애초에 개선될 수 없는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층의 극한 생존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기는커녕 오늘도 '빈곤은 빈곤으로서 발전해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중략)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과 더불어
'지금 당장' 도와주어야 한다.
[본문 81~82쪽]
위에 인용해놓은 한비야의 말도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쓰인 2003년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얼마큼 달라졌을까요? 더글러스 루미즈가 -에세이를 쓴- 2002년에 이미 지적한 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의 힘 있는 주요 기구들은 세계경제가 감속하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더욱 성장을 촉진시킬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과 같은 국가의 제로 성장률을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합니다. 루미즈의 말대로 1972년 도넬라 메도스 박사가 공저했던 <성장의 한계> 같은 책은 마치 쓰여지지도 않았던 것 같이 느껴집니다.
<성장의 한계-로마 클럽 인류 위기의 리포트>에서 도넬라 메도스 박사는 유한한 지구 환경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세계 인구와 공업화, 공해, 식량 감소, 자원 감소가 결국 인류를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략 100년 정도면 말입니다. 세계의 주요 기관과 각국의 정부는 여태껏 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나요? '장기적인 노력'이 제대로 되고 있긴 한가요? 불평등을 전제로 한 현재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전 세계의 극빈국과 극빈곤층을 영원히 구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으로의 초대는 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비야의 주장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요.

당장 답도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이틀 동안 생각에 잠기며 골머리를 앓았더니 나중에는 머리에 쥐까지 났습니다(허허허..).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 아래에선 아무리 개개인이 바뀐다 한들 그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한계가 있는 이 지구처럼 말이죠. 인류가 불러온 파멸에 의해 지구가 쫑 나기 전에 경제 성장을 동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세대 이후의 말로는 뻔합니다. 헌데 그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니라는 이유로 언제까지 머나먼 일로만 취급할 건가요?
어쩌면 아직은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말입니다. 이제는 정말, 정말로 경제 성장을 멈추고 다 같이 '춤을 출'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