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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감동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 잭과 콩나무 외 8편 ㅣ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스콧 구스타프손 지음, 토마스 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누가 썼는지는 잘 몰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익히 다 알고 있을 저 글귀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1'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는 이 문구(나태주 시인의 책 제목이기도 하지요)는 첫인상에 휘둘리기보다는 그 존재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걸로 생각되는데요.
우리는 살아오며 첫인상에 휘둘리지 말고 눈앞에 있는 존재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인생의 중요한 이 진리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지겹도록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겐 영혼과 더불어 물질세계에 속해 있는 이 몸뚱어리 덕분에 상대의 매혹적인 첫인상에 휘둘리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이 동화책의 첫인상에 그만 넋을 잃고 두 손에 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요. 바로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를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 동화책을 제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리 없지요!

스콧 구스타프손은 오랜 시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작 동화들을 엄선해서 재구성하고, 아름다운 유화 일러스트를 곁들여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라는 이름으로 3권을 묶어냈습니다. '동화'하면 교훈도 교훈이지만 역시 재미가 우선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 중 <재미와 감동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편을 먼저 읽어보았답니다.
동화책을 펼쳐 그 유려하고도 독특한 그림체와 아름다운 색감을 보고 있노라니 구스타프손이 '스펙트럼 판타스틱 아트 라이브'에서 그랜드 마스터 대상을 받을만한 실력자라는 게 너무도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시골 쥐와 도시 쥐'에서 시골 쥐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던 도시 쥐 식탁 묘사의 정교함이라든가, '잠자는 공주'에서 누가 보았더라도 한눈에 반했을 들장미 공주의 미모, 혹은 '꼬마 삼바와 호랑이'에서 그 생동감 있는 삼바의 표정과 탁월한 호랑이 묘사는 동화책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유화 작품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더군요. 거기다 '잭과 콩나무'는 어떻고요! 거인의 리얼한 묘사에 '잭! 얼른 달려! 더 빨리 달려!'라고 외치는 제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섬세하게 표현된 인물들의 표정 묘사와 각 이야기가 지닌 시대적 특성과 지역적 색깔이 반영된 소품-식기, 의상, 인테리어 등-들이 책의 완성도에 더욱 기여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는 아이들이 동화를 읽을 때 더욱 몰입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듭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사자와 쥐'라는 작품이 구스타프손의 훌륭한 이 일러스트처럼 완성도 높은 삽화가 곁들여져 있었기에 그 그림책 속 사자의 슬픈 표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훌륭한 그림도 그림이지만 구스타프손이 재구성한 이야기도 은근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왕자는 문득문득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궁중 악사들은 백 년 전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수많은 손님들의 대화는 정말 옛날식이었거든요.
하지만 젊은 부부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본문 24쪽]
위 인용은 '잠자는 공주' 편의 말미에서 나오는 부분인데요. 제가 여태까지 읽어온 '잠자는 공주'의 여러 다른 버전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글귀랍니다. 꽤 매력적이지 않나요?
큼지막한 책 크기에 첫인상부터 저를 사로잡았던 이 아름다운 그림 동화책은 두고두고 다시 꺼내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예술적 영감이나 창조적인 감성은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부터 더 크게 자극받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 그림책은 그저 단순한 동화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책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