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한마디로 정의를 묻는 질문이다”(p.16)

샌델은 거시적으로 ‘정의’는 ‘국가의 체제’, 곧 ‘법’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바라보는 듯하다. ‘정의의 확립’을 위한 전제가 ‘법의 확립이다’라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우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태도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고민의 결과를 ‘법이 기능하는 범주, 그리고 그 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되기 위한 최적의 사회는 어떠한 형태인가’로 확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측면, 곧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설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최선의 삶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그리고 정의와 관련한 오늘날의 주장이 대부분 ‘분배의 정의’에 경도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샌델 역시 그것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 듯하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p.33)

그러나 샌델은 ‘정의’의 문제가 ‘행복 추구를 위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지배적인 흐름인 현대 사회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미덕’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싶기도 하다

“정의에는 선택뿐 아니라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을 뿌리가 깊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중략)…정의와 관련한 오늘날의 주장은 거의 다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를 지배하는 사고는 행복과 자유다. 그러나 경제적 분배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다보면, 어떤 사람이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p.22-25)

샐던은 ‘재화 분배의 방식’, 곧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행복, 자유, 미덕’의 장·단점을 살펴, 정의의 원칙을 추론해내려는 시도를 한다. 이때 추론하는 방식은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각 항의 주된 이론적 틀-‘공리주의, 자유주와 공평주의, 미덕-보수주의’-의 비판적 접근이다. 이 방식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어려운 도덕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덕적 고민이 어떤 식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지부터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는 대개 옳은 행위에 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확신의 이유를 생각하고,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는다. 그리고 그 원칙을 반박하는 상황을 고려한 뒤에 결론에 도달한다.(p.45)

특히, 샐던은 여러 사상가들-아리스토텔레스, 이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 등-의 사상들을 살펴보면서 독자로 하여금 ‘정의’에 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p.362)

그리고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p.362)다면서 정부가 여러 가지 상황-도덕적 딜레마-에 ‘좀더 적극적으로 시민의 삶에 개입해야한다’(p.370)고 밝힌다. 물론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p,370)라는 겸손함(?)도 보이면서.

이 책의 목적은 자명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나아가 고민의 결과로 도출할 수 있는 ‘합리적 사회 조직은 어떤 형태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시점에 유의미한 화두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교조적으로까지 느껴지게 하는 샐던의 프레임이다. 자칫 독자는 샐던에 의해 설정된 프레임에 갇힐 공산이 다분해 보인다. 더욱이 나처럼 샐던에 의해 필터링된 제이론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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