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과 육성
최수철 / 열음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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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알몸과 육성>, (열음사,1991) 내 등에 칼을 꽂고, 내 등에 칼을 꽂고, 내가 나의 뒤에 서, 내 등에 칼을 꽂아, 내 등에 칼을 꽂아, 내가 나의 뒤에 서.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정말 눈으로 읽지만 머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소설 속에 침윤되어 소설의 첫부분이 까마득하게 밀려나 버리는 경험을 했다. 이건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 당혹스러운 시점을 힘겹게 힘겹게 넘어가는 와중에 마주친 문장이 소설 읽기를 포기하게끔 했다. '사실, 이 글은 어느 모로 보나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적어도 지금은 이것이 소설이라고 고집스럽게 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p. 136.)

오, 빌어먹을. 소설의 첫부분에서 분명히 이건 소설이다. 이것이 소설임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는 작가의 확신에 찬 문구가 뒤통수를 후려 갈긴다. 젠장, 게다가 그 문장을 마주치자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말 쓴 웃음 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난 소설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소설가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난 실험당하는 마루타인가? 한 번 잡은 책은 반드시 끝장을 보는 성격탓으로 좀이 쑤시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소설 읽기를 마쳤다. 사실 이것은 소설 읽기라기 보다 내 참을 성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소설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난 철저하게 내 의식이라든가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 혹은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선의 단절 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밖에서 젊은 남녀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의 울음 소리가 내 소설 쓰기를 방해한다.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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