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알게 되었다. 다섯 번째 생에서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그 질문, 나를 사랑하느냐는 그 질문이 사실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덫이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랑이란 매일 함께 있고 싶은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끊임없이 생각나는 것이라고. 물론 어느 부분에선 옳았지만,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별 하나에 불과했다. 별 하나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우주가 아닌 것이 되지 않듯이 사랑도 그랬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때문에 나는 다음번 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저 바라는 것은,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애가 좋은 곳에 있기를.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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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구나, 깨달았다.
그래도 괜찮었다.
좋은 곳에 가라.
이상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말은 그것이었다.
좋은 곳에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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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언제 와도 좋구나."
엄마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이들이 뭔가 특별히 좋은 일이 있어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때가 되어서, 다시 올 수 있을 때가 되어서 온 것이었고 두 사람 다 그때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려왔다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내가 마음 깊이 바라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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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은 자신이 ‘마지막 슬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세상의 슬픔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에게 위안은 세상에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깊은 사랑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결국 그의 삶 자체가 커다란 사랑이 되었다. 딸은 언제나 그에게 빛이었다. 길을 안내하는, 혹시 하쿠나마타타라는 말을 그에게 들려준 사람은 딸이 아니었을까? 매일 밤 사뿐사뿐 그를 찾아와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 글을 쓰면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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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재난참사로 가족을 잃은 슬픈 사람들끼리 만 든 조직(‘펜박penvac‘ 이라는 이름의 조직이다)을 프랑스에서 취재한 일이 있었다. 조직의 목적은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이런 조직이 만들어진 덕분에 슬픈 사람들은 가장 인간적인 단어 아래 모일 수 있었다. ‘연대‘라는 단어였다. 슬픈 사람들은 그 단어 아래 모여, 그 단어를 임시 피난처 삼아, 다시 인간들 틈에서 짧은 위안을 구하고 어두운 마음을 헤집어 해야 할 말을 찾아냈다. 내가 프랑스에서 들은 연대의 정의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에 속한다.
연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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