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동정 없는 세상│박현욱│문학동네│2001.06.18│p.206

 

 

 

촌스러움 그득한 표지, 날을 깊게 세운 제목 때문에 잔뜩 움츠러 긴장하고 제법 그럴듯한 가드자세를 취하고 - 조금이라도 건들라치면 잽싸게 내 뺄 기세로 - 시작한 책은, 하하하하, 오만방자했던 나의 추측을 보란 듯이 무너트리며 어느 한 순간도 위트를 잃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맞아요, 정말 재미가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며, 거스르지 않는 전개 모두 내가 꼽는 문학의 가치, 즐거움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몰락거립니다.

 

열아홉, 막 수능을 치른 준호의 목표는 좋은 대학도 희망찬 미래도 아닌 여자친구와 '한번'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동정(童貞)을 떼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준호의 가족은 헤어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유일한 경제 생활자 엄마와 명문대 법대 출신이지만 한 번도 취직경험이 없는 완전한 백수 삼촌뿐입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탈선, 십대의 뜨거운 반항이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냉대 혹은 경제적인 곤란 등은 가볍게 훅(hook). 마치 어른이 되기 위한 관문인 양 동정 떼기에만 몰입하는 준호의 시선을 빠른 템포로 흔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 동정(同情)없는 세상에 닿습니다.

 

 

p.142

 

십년 동안은 우선 네가 무얼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데 써 봐. 그런 것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또 너랑 할 수 있는 일이기도해.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과도 비슷해 .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데 그런 쓸데없는 공부가 인문학이고 그런 걸 공부하는 데가 대학이야.”

 

 

오매불망하던 목표를 이루었을 때 몰려왔던 허무 앞에서 준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행위 자체가 줄 수 있는 위안은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그는 동정 없는 세상에 조심스럽게 한 발을 들입니다. p. 153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나한테 미대는 그래. 이제 와서 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강렬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다보면 결국 물이 마르게 도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야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라.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에게 미용학원을 권하는 엄마가 있었다면, 만화방을 하는 삼촌이 있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 제법 달라져 있겠지 하며 피식 웃음을 쏟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엄마, 나의 삼촌으로의 원망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제멋대로 성장 중인 나의 청춘의 날들로의 응원쯤으로, 그게 무엇이든 의미 없는 것들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당위로 - 설령 당신의 기준에 한껏 부족하더라도 - 나는 가득 부풀어 오릅니다. 과연 이 동정없는 세상에서 진짜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런지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질문을 끄적입니다. 그리고 잠시,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나의 꼬마시절을 어설피 추억하며 준호에서 cheers!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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