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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손보미 외│2012.04.23│p.315
‘젊은’이라는 단어가 좋아서 읽기 시작한 수상집의 세 번째 이야기. 낯익어 반가운 혹은 만나고 싶었던, 그리고 낯설어 더욱 반가운 그들의 활자로 각자의 오묘한 매력을 함뿍 담은 작품들에서 ‘ 아, 즐거운 책읽기여! ’ 라는 자못 근원적인 얻음으로부터 나는 내가 책을 읽어야만하는 당위를 더하니 가끔 이렇게 완벽한 순간도 있구나. (무릎, 탁!) 어딘지 부러 숙성시킨 듯 떫은 과일 같아서, 펄펄 끓어오르지도 꽁꽁 얼어붙지도 못한 미지근한 그 단편으로의 단호했던 외면은 봄날의 눈처럼 사르륵 녹아내립니다. 더욱이 여유롭지 않은 시간들에 한 호흡으로 읽어낼 수 있어서 어찌나 좋은지.
손보미, 「폭우」 _ 너무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우연하거나 혹은 필연적으로 얽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 달라 어느 한 점 겹쳐질 것 같지 않아서 꼬꾸라지듯 수직으로 떨어져서야 닿은 두 여자의 삶, 위태로운 폭우 속의 정적처럼 고요해서 불안한 오해 어쩌면 진실이 결국은 한점에 이릅니다. 대상수상작이라기에 잔뜩 기대가 부풀어 올라 만난 손보미의 「폭우」는 조금 시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득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태어 기록을 남기려니 그 시시함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거죠. 어떠한 대답도 거부한 채 끝나버린 이야기의 짙은 단상의 여유 끝이 오래도록 묻어납니다.
김미월, 「프라자호텔」 _ 매년 호텔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 부부의 모습을 조용히 쫓아갑니다. 그리고 ‘호텔’ 때문에 기억하게 되는 남편의 첫사랑, 그 서투르고 조바심 났던 시간을 더듬어 조근조근 이야기 합니다. 부부의 모습이 연분홍빛 - 왜 사랑이라고 하면 새빨아간 붉은빛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그 붉음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한데 부부의 모습에서 팔팔 끓는 뜨거움이 아니라 적당히 식어 몸을 담그기에 좋은, 따뜻한 분홍빛 - 이라면 남편의 기억 속 첫사랑의 그녀는 푸름,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파릇파릇합니다. 건조한 듯 제법 무심하게 읽히는 활자에서는 햇빛을 가득 담아 바짝 마른 빨래가 전해주는 기분 좋은 마름이 그득하니, 그리고 웃음 짓게 하는 반전에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합니다. p. 82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군가의 내면을 상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작가노트 중에서)
황정은, 「양산 펴기」 _ 내겐 견고한 믿음을 얹은 고유명사가 된 그녀의 이름입니다. 지구본을 살까, 장어를 먹을까에서 비롯된 연인의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p. 93 그뒤로 더는 말 나누지 않고 밤엔 등을 돌리고 누웠다. 그게 전부였으니 다퉜다기보다는 다쳤다고 해야 하나. 감정이랄까 자존심이랄까 어딘가 손쓰기 어려운 심층적인 부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녀의 해학을 한소끔 더해서 뜨거운 여름날 뙤약볕처럼 흔들림 없이 견고하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당황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거움을 토해내는 하늘이 마치 우리의 젊음을 보는 것 같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젊은 연인의 여름이 맛있는 장어를 먹고 힘을 내어 방수가 완벽한 자외선 차단 로베르따 디 까메르노 양산을 쓰고 건강하기를.
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 _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처럼 숨통이 콱 막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니기를 바랐던 반전은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내어주니 ‘서스펜스’라고 하기엔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흥미가 생겨 관람한 영화가 예고편이 전부였던 허탈감이 엄습해오는 기분입니다.
김성중, 「국경시장」 _ 젊은작가상을 세 번 모두 수상한 그녀의 이야기는 <서른 Thirty>라는 작품집에서 먼저 만났습니다. 기억을 팔아 물건을 사는 ‘국경시장’이라는 발상은 다시 읽어도 참 재미있습니다. 트리플 수상이 증명해주듯 그녀의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이 잘 직조되어 재미있고 그들의 이야기지만 또 내 이야기가 되어 잠잠하던 나의 내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킵니다. p. 217 서로에게 타인이기 때문에 비밀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스무살에 만난 친구와의 통화를 다독입니다. 나의 스무살도 싱그라움은 웅크린 채 아쉬움 투성이지요. 이제 20대 초반의 젊음을 마주하면 그 좋은 '때'가 망연히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떤 기억을 팔고 싶은가요?
이영훈,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_ 문제는 ‘똥’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았던 이야기들의 마지막에 ‘이거 뭐야?’라며 키득키득 웃으며 읽어내린 이야기입니다. (아, 편집자의 센스겠지요?) 지난 해 통영에 다녀오는 길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복통, 휴가철 도로는 변비처럼 꽉 막혀있는데 숨쉬는 것조차 위태로왔던 그날이 생각나서 나는 또 다시 아랫배가 움찔합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복통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것들의 실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나와 함께 삼십대를 보내고 있는 젊은작가들의 이야기가 지난해보다 더욱 풍성해졌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기위해 위시를 늘려야하구요, 그 또한 너무 감사합니다. 7명의 젊은 작가들이 우리에게 건넨 선물 이제 당신께 건넵니다. 풀어볼래요?
p. 196
철드는 게 나쁘거나 대단한 게 아니예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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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읽기를권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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